내 친구 한사람이 며칠전에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다 손가락을 크게 다쳤다. 턱수염을 그렇게 깎지말고 이렇게 깎으라고 지시를 하다가 면도칼과 탁 마주쳐서 하마트면 손가락 한 개가 날라갈뻔 했다고 한다. 그날 이발소에 간 것이 잘못이요 이발소에 갔더라도 그 시간에 간 것이 잘못이요 그 시간에 갔더라도 그 아가씨 면도사를 만난것이 잘못이요 그 아가씨를 만났더라도 손짓을 한 것이 잘못이요 손짓을 했더라도 면도하면 손을 얼른 내린 것이 잘못이었다. 한참 따져도 무엇을 탓해야 좋을지 몰라 하는 수 없이 그날 운수가 불길한 것으로 낙착을 지워 이발소 책임을 더 캐지않고 가라앉혔다고 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운수나 재수가 없어 그런것도 아니요 꿈자리가 사나왔거나 일진이 나빠서 봉변을 한 것도 아니었다. 방심에서 온 사고이니 믿지못할 것을 믿은 탈이었다. 언제 알았다고 초면의 그 아가씨 면도사를 믿을 생각이 들었던가.
버스가 벼랑으로 굴러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고한 교통사고가 며칠전에 일어났다. 나중에 알고보니 술이 얼근히 취한 운전사가 깜빡 졸다가 큰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런것도 모르고 손님들은 그를 턱 믿고 가다가 노래를 하던 이도, 코를 골며 자던 이도, 시장해서 요기를 하던 이도, 버스와 운명을 같이 한 것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때죽음이었다. 그날 길을 떠난것이 잘못이었고 그날 떠났더라도 그 시간을 잡은것이 잘못이었고 그 시간을 잡았더라도 버스를 탄 것이 잘못이었고 버스를 탔더라도 그 회사 버스를 탄 것이 잘못이었고 그 회사 버스를 탔더라도 술먹은 운전사를 만난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운수나 재수로 들릴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가가 참사를 통해 증명이 되었을 따름이다.
약을 잘못써서 죽는수도 있다. 수술을 할때 가위를 뱃속에 넣은채 꿰매버려 병이 덧나서 큰소동이 나는 수도 있다.
그뿐인가 몇십년 징역을 살고 나온 다음에 진범이 나타나는 일도 있고 공동묘지에 모신 무덤에 해마다 한식과 추석을 한번도 거르지 않고 성묘를 해왔는데 공동묘지를 옮길때 무덤을 파보니 다른 사람 무덤이었다. 6.25때 공산군이 쳐내려와서 나무를 깍아 세운 묘비를 뽑아다가 땔감으로 썼는데 서울 수복 뒤에 유가족이 눈어림으로 가족무덤을 찾아 묘비를 다시 해세웠을때 한 집 것이 빗나가니까 그 일대가 모조리 틀려버린것이었다. 해마다 남의 무덤에 술상을 차려놓고 울고불고 하였으니 이런 희극 아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었겠는가.
참으로 믿지못할 것은 사람이요 사람이 하는 짓이요 사람이 저질러 놓은 일이다. 믿을 수 없는 짓을 믿어온 어리석음에서 깨어날 때 비로소 든든한 믿음 완전한 믿음 절대적인 믿음 영원한 믿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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