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교회는 원래 순교자의 무덤위에 세워지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왔다.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이 베드로 사도의 무덤위에 세워진 이래 세계 각국에서 그리스도교의 전교는 순교의 피를 통해서 실현되었다. 우리 한국에서도 일찍이 이조때에 여러차례의 박해를 통하여 무려 1만여 명의 순교자들 굳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울의 명동대성당 지하실에는 우리 순교 복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복자성월인 이 9월에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전국협의회는 복자자 김대건 신부 시성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한국보다 좀 앞서서 가돌릭교를 받아들였지만 현재의 교세를 보면 한국보다 훨씬 뒤져있는 일본에서도 성인품에 오른 이들이 있는것을 생각한다면 한국에서도 김대건 신부 한 분 뿐아니라 몇 분쯤 더 시성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교세에 입각한 명분만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순교사가 지극히 장열했던 점과 그 순교가 한국 및 동양의 정신사에서 지니는 가치까치 인정해야 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현세에서 떠나간 거룩한 순교자들을 추앙하는데서만 그쳐서도 안될성이다. 순교자들의 높은뜻을 기리는 일과 시성운동은 그것대로 전개되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우리는 오늘과 내일에 있어서 스스로도 순교적 정신과 거기에 일치되는 실천을 보여주어야 할 사명을 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명에 대해서 어떤이는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는 사회에서 왜 순교가 필요하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순교정신의 참된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를 느낀다.
순교도 또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만이 라수 있는 일이지 아무 사람이나 자기가 하고자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는말도있다. 과연 김대건 신부와 같이 형장에 끓려 앉힌 후에도『이렇게 하면 목을 베기에 편하겠느냐』고 하며 목을 꼿꼿이 내밀만큼 태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영웅적인 용기라고 말할 수 밖에없다. 범인들마저도 다 그렇게 용기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순교라는 것을 자기네와 관련없는 동떨어진 일이라고 외면해 버려야 할 것인가.
그렇게해서도 안된다. 현대의 평범한 대중들에게는 순교정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추어 생활하고 행동하는 일이 사명으로 주어진다.
즉 하느님과 그리스도가 가르친바 진리를 목숨보다도 중하게 여기는 자세가 순교정신의 기초이지만 사람들이 꼭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형장에서 쓰러져야만할 장황은 결코 흔하지 않은 것이다. 또 고통이나 피흘림 자체만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화하고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보다 매진할 수 있느냐 하는데 있을것이다.
이 본질적인 지향점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에게는 비상한 의지력이 요청된다.
그것은 바로「자기를 버리는 일이며 남을 사랑하는일」이다. 우리가 늘 말하며 잘 알고있는 이러한 일도 그것을 실천하기는 실로 어렵기 그지없으므로 여기에 바로 순교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할수 있는것 이다.
즉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피 안 흘리는 순교」삼아서 순교정신에 입각한 생활을 해야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해마다 복자성월을 지내고 있으며 또 올해에는「79위 복자 50주년」기념행사도 거행하지만 요는 의식이나 형식만이 아닌 산 순교정신의 약동이 아쉬운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있는 세계적 판도에서 부조리한 일들을 들추어 반성하는 일까지는 접어둔다 하더라도 오늘의 한국교회와 교회에 맡겨진 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을 실천하고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의 우리사회가 역사적 진로를 취하는데 있어서「자유, 복지, 평화」를 내용으로 하는 이념을 과연 체계있게 지니고 있으며 또 이 이념을 체질화해 가고있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이념은 원래 그리스도교의 전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이념이 이사회에 결핍되어 있다면 그 진리의 이념을 공급해 주어야 할 책임이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주교회의나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는 오늘날 우리 형제들이 사는 세상에 대하여 빛과 소금을 주는 창조적 사명감을 부지런히 추구해가고 있는가, 아니면 나태한 무사안일주의를 원만의 미덕으로 내세우고 있지나 않은가 생각해볼 일이다.
평신도 협의회는 대사회적 역할에 있어서 어떠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는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는 정의평화위원회의 활성화와 활약을 왜 빨리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가, 그때 그때의 명분론이나 호언보다도 일관성있고 견실하면서 세상속에 살아있는 신앙운동이 너무도 아쉬운 것 같다.
지엽적인 이야기이지만 최근에 조총련계 재일교포의 모국방문이 왕성해진것 같은것이 여러모로 의의깊은 현상이다. 결국은「개방ㆍ자유ㆍ진실」만이 만사에 있어서 최선책이며 그길만이 승리의 길이 될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책을 북한지역에까지 확대하겠다는 비젼을 가지면서 교회는 우리나라와 민족의 통일과 평화달성까지를 거시적으로 내다보면서「나를 버리고 남을 사랑하는」순교정신의 실천에 있어 진실성을 입증해 나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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