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여보게, 기분이 울적하고 답답하면 자네는 무엇을 하나?』
친구들은 대답한다.
『글쎄? 담배 한 대 피워물고 술마실 궁리를 하지,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나는 싱긋이 웃는다. 『그냥 물어본거지 뭐』
이 나이에 어제, 오늘, 새삼스럽게 세상이 살기 힘들고 답답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해본것은 아니다.
하기는 점점 더 삶의 고귀함과 어려움을 깨닫는 것도 사실이지만 요즘은 왠일인지 자주 우울하다. 그런데 마침 나는 그 우울증을 달래기 위해 내 딴에는 제법 신묘한 방법을 창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친구들 가운데 혹시 내가 쓰는 방법을 이미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충동이 있기 때문이었다.
『싱거운 사람같으니 … 현대인으로서 스트레스없는 사람이 어디있어? 아 뭐 운동을 한다든가 등산을 한다든가 방법은 많지않아?』나는 친구의 구박을 받으면서 그냥 그대로 빙그레 웃는다. 친구가 제시하는 해결책 가운데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쓰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나는, 동생들 몰래 맛있는 과자를 감춰두고 먹던 어린 시절처럼, 장난기어린 쾌감이 생긴다.
그러면 우울할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동요를 부른다. 될수록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부른다. 혼자 있을때는 소리내어 부르기도 한다. 동요의 세계에는 근심 걱정이 없다. 온 세상은 도무지 아름답고 화려해 보인다. 알고있는 것은 경이로우니까 찬양해야 하고, 모르는 것은 한없이 신비로우니까 또 찬양해야 한다. 동요의 세계에는 언제나 꽃이피어 있고, 언제보아도 맑고 푸른 하늘을 닮은 시냇물이 흐른다. 요컨대 그것은 꿈의 세계다. 그 꿈이 동요에는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주춤한다. 「이런 심리상태를 심리학에서는 무어라고 한대더라? 아무래도 진취적일수 없는 퇴영적 성향은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동요를 부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파란콩 먹으면 파랗게 되는 새처럼 나는 동요를 부르면 어린이가 된다.
며칠 전만 해도, 무언가 울적한 기분 때문에 서재에 나와 마당가에서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이렇게 노래를 부르는데, 할머니 손을 잡고 옆집에 마을 갔던 세돌 지난 딸아이가 내옆으로 다가왔다.
『아빠 뭐해?』
『응 달구경해』
『달구경 나두해 아빠』
『그래 같이보자 참 밝지? 동그랗게 잘도 생겼구』
『그래 아빠 참 예쁘지? 가졌으면 좋겠다 아빠 저 달 나 줘. 먹고 싶은데 … 』
나는 깜짝 놀랐다.
「달」을 가질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딸아이의 특권도 부러웠지만 그것을 과자처럼 먹을수도 있겠다는 그 엄청난 상상력이 부러웠다. 그것은 딸아이에게 있어서, 상상력이 아니라 바로 그의 현실세계일 것이다. 자기가 잠재운 인형이 잠을 깬다고 아빠더러 조용히 하라는 명령에 나는가끔 인형옆에서 발걸음 죽이던 것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래 우리 식구가 다 모이면 다 같이 나눠먹자 저 달을 … 』
영악한 어른이 되어, 사리판단이 명쾌하고 분명하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늘보는 친구 늘 만나는 이웃끼리도 자그마한 이해가 얽혔을 때에는 웃음 한번 더웃고 눈길 한번 더주는 계산된 분위기에서 해도 달도 별도 마음대로 가지고 먹을수 있는 어린이의 마음은 얼마나 밝고 청신한 것인가?
나는 딸아이를 안고 동요를 불렀다.
『달 달 무슨달 쟁반같이 둥근달』
▲지금까지 윤석중씨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이번호부터는 심재기 교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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