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마을엔 꼽추 거지가 한 사람 있었다. 뒷동산에 움막을 치고 살았는데 지금 생가하니 거지라기 보다는 가난한 풍류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리에 잔치가 있는 날이면 으레 이 거지는 자기나름의 말쑥한 옷을 차려입고 잔치집에 나타나서는 여늬 손님들과 똑같이 어울려서 음식대접을 받았다. 술이 한 잔 들어가고 기분이 좋으면 코끝이 빨게가지고 어깨를 으쓱대며 춤을 추는 것이었는데, 제물에 꼽추춤이 되니까 그 구경거리란 참으로 볼 만한 것이었다. 동리 사람들은 아무도 그 꼽추를 놀려주거나 구박하지 않았는데 어린 내 소견에도 그 꼽추를 그냥 거지로 취급하기엔 너무도 품위가 있어 보였다.
한번은 내가 편도선염이 있었던지 목구멍이 잔뜩 부어서 밥을 못먹고 쩔쩔맨 일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꼽추는 자기가 아는 약방에서 얻어왔다고 하면서 앞뒤 구멍이 뚫린 붓뚜껑과 약 한 봉지를 가져다 주었다. 붓뚜껑 한 쪽에 약가루를 밀어넣고 그것을 부은 목구멍에 가까이 댄 다음 엄마보고 훅- 불어주라고 하였다. 한참있다가 소금물로 양치질을 시키라고도 했다. 엄마와 나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신기하게도 하룻밤 지나고나니까 목구멍에 부은것이 씻은듯이 나아버렸다.
꼽추는 내가 목구멍이 나았다고 좋아하는 날 저녁에 우리집을 찾아와서 엄마를 보더니 대뜸,
『아주머니, 애기 목이 다 나았지요? 나 오늘부터 닷새만 저녁 먹으러 오겠우. 좀 있다 들를 터이니 차려주시오』이렇게 말하고는 횅녀키 대문밖으로 사라졌다. 그 꼽추는 구걸을 해도 매사 이런 식이어서 사실은 공짜로 그냥 먹는 법이란 전혀 없었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 꼽추는 머리가 좀 돌았다고 했다. 주역(周易)인가 뭔가하는 책을 삼천번이나 읽고 그만 공부에 미쳤다는 것이었다. 나는 동리 꼬마들과 어울려서 뒷동산으로 매미를 잡으러 갔다가, 꼽추가 자기집 움막앞 나무 그늘에서 한문책을 펴놓고 웅얼웅얼 소리내어 읊조리는 것을 여러번 본 일이 있었다.
『얘들아, 매미 잡으러 왔니? 』
『예, 아저씨, 좀 잡아 주실래요? 』
숙기좋은 내 친구 녀석들이 글 읽는 꼽추의 멍석자리 곁으로 삥 둘러 섰다. 꼽추는 일어나 봤자 그때의 우리들 키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키로 발돋움을 해가며 자기집 움막지붕을 막대기로 헤집더니 그때의 내 엄지손가락만한 굼벵이를 집어 내는 것이 아닌가?
『자! 여기 잘 생긴 매미가 있다』
『에이, 그게 어디 굼벵이지 매미예요? 』우리들은 합창이나 하듯이 꼽추에게로 대들었다.
『이놈들, 이 굼벵이가 여러해 만에 도(道)를 닦아서 매미가 되는 거야』
『헤? 아저씨 거짓말이야 엉터리다』 우리들은 제각기 지껄여대며 꼽추를 떠나 매미우는 밤나무로 몰려갔었다.
그런 일이있은 몇 해 뒤에야 나는 꼽추의 말이 진실이었고 배추벌레가 노랑나비로 된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꼽추는 우리 꼬마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던것 같다.
『이놈들! 이 꼽추가 여러해만에 도를 닦아서 신선(神仙)이 되는거야! 』
신선이 사는 세계가 있다면 지금 그 꼽추는 분명히 거게에 살고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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