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일찍부터 세상을 떠난 신자 가운데서 그 신앙생활이 뛰어나게 모범적이었고 사후에도 신앙생활의 귀감으로써 널리 신자들의 존경을 받으며 그 신심을 불러 일으키는 자에게 성인 또는 성녀의 칭호를 붙여 전 세계의 모든 신자들에게 특별한 존경을 바치게 하고 기도의 전달을 구하게 하고, 신앙생활의 수호자로 삼게하여 왔다.
이와 같은 시성은 성인이나 성녀로 선언되는 자의 천상에서의 영광을 위한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누리고 있는 그들의 영광을 지상의 교회가 모든 신자들에게 공식으로 선언함으로써 지상의 신자들이 그 도움을 구하고 신앙생활의 귀감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완성하려는데 그뜻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시성을 위한 조사와 판정에 신중을 거듭하여 왔으며 특히 17세기부터는 그 요건과 절차를 크게 강화하였다. 교구 법원을 거쳐 올라온 시성 신청을 심사하기 위하여 교황청 성사 및 경신성성에 특별위원회를 두고 그 대상자가 생전에 한 신앙생활과 일상생활 및 그 모든 업적을 세밀히 심사하고 또 그를 통하여 일어난 기적들을 면밀히 심사하는 등 여러 해가 걸리는 심사를 받아야 할 뿐아니라 시성을 위하여 먼저 시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우리 선조들이 어느나라의 교회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랑스러운 방법으로 초대교회를 세웠다. 세례도 받지못한 미신자들이 스스로 북경에서 교리서적과 기도서와 성물 등을 가져왔고 자기발로 북경에 가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고 귀국한 한 평신자의 손으로 많은 영세자들을 냄으로써 이 땅에 성직자 없는 평신도의 교회가 세워졌던 것이다. 교회사가들이 말하는 이른바 전대미문의 가성직교회시대를 겪는 등 선의의 과오를 저질기는 했으나 관헌의 눈을 피하며 복음을 전파하는데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 후 그들의 손으로 성직자를 모셔오는데 성공하여 명실공히 한국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잇따른 1백년 박해로 수만의 순교자를 내어 한국교회의 초석을 튼튼하게 했던것이다.
처음부터 한국교회는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와 은총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순교한 초기신자들의 신심과 그 행적도 또한 비범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신앙생활과 그 행적은 길이길이 한국신자들의 존경의 대상이며 귀감일뿐 아니라 널리 온 세계의 모든 신자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 중에서 특히 그 행적이 뛰어나고 증거가 확실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시성을 원해 왔다. 또한 이와같은 시성운동은 그들의 후예인 우리들의 마땅한 의무요 신앙고백이라고 할 것이다.
순교자 중 이미 103위는 복자품에 오르셨고 그 중 79위는 금년에 시복 50주년을 맞이하였다. 그 외의 많은 순교자에 대하여도 계속 생전의 전교활동과 순교기록 등을 면밀히 조사하여 그 결과에 따라 시복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고 이미 시복된 103위에 대하여는 그 자료를 더욱 조사보완하고 기적을 빌어 성인품에 오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시성운동을 위하여는 먼저 그 전담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복자의 시성운동을 뜻한지는 이미 여러해가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그전담기구마저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시성은 교회법 제2003조에서 제2036조, 제2136조에서 제2141조가 규정한 까다로운 요건과 절차를 충족시켜야 하는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동시에 그 요건에 충족되는 자료발견을 위한 전문적 활동이 필요한 것이므로 우선 그 전담기구의 설치가 시급하며 교구법원 및 성청과의 섭외적 활동도 필요하다.
둘째로는 순교자에 대한 충분한 자료조사이다. 가장 증거력이 강한 기록과 유물 유적 등을 중심으로 그 신앙생활과 일상생활 및 순교하게 된 제반사정과 동기와 그 과정을 상세히 조사기록하여야 할 것이다. 다행히 이 일에 협력받을 수 있는 교회내의 기관으로서 한국 교회사 연구소가 있고 순교자 기념성당에 순교자들의 유물전시관 등이 있고 또「빠리」외방전교회 본부에 한국순교자의 유물 등이 수집전시되어 있다. 순교자의 유물수집 운동이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한편 그 유물과 유적 보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순교자의 시성에 있어서 특히 유의할 점이 있다.
4세기의「미라노칙령」까지는 오로지 순교자만을 성인 성녀로 받들었고 현재에도 순교는 그리스도의 증거자로서의 가장 명확한 표징으로 삼고 있어 그 시성 요건도 완화되어 있다. 그러나 순교자의 치명과 광신으로 인한 치명의 자청과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순교는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이기에 그 부르심 없는 치명은 순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시복의 대상도 될수 없다. 그래서 순교의 동기와 그 과정을 상세히 조사하여 하느님의 부르심을 밝혀야 할 것이다.
셋째로는 순교자를 통하여 얼어나는 기적이다. 크게 보면 한국교회의 시작과 그 순교사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성을 위하여는 특정순교자를 통하여 일어난 기적들을 요구한다.
정상적으로 시복된 복자인 경우에는 두 번의 기적으로 족하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복자를 통한 기적을 구하여야 하고 그 확인자료를 마련하여야 한다.
넷째로는 그 순교자에 대한 우리들의 특별한 존경이다. 그 순교자의 행적에 대한 모든 신자들의 뜨거운 존경은 곧 그 시성 자격에 관한 산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신앙적 귀감이 되는 그 사실들이 더욱 널리 또 보다 상세하게 모든 신자들속에 회자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여름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우리 복자들의 시성운동을 결의하였고 또 79위 순교복자 시복 50주년을 맞은 주교단 사목교서가 역시 시성운동을 호소하였기에 그 계획성있고 구체적인 활동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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