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인들을 존경한다. 노인들은 나를 실망시킨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 생애에서 첫번째로 외경의 대상이 되셨던 노인은 나의 외할아버님이었다.
그분의 인상은 꼭 월남 이상재 선생처럼, 하관이 빠르고 갸름한 얼굴에 턱밑으로만 수염이 길게 뻗어있었다.
무척 겁이 많으셨던 모양으로 기미년 3ㆍ1 운동 때에는 중문 안에서부터『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뛰어나가셨다가 동구앞에서 주재소 순사에게 붙들리고 말으셨는데, 주재소에 끌려가셔서는『절대로 독립만세를 부르지않고 그냥 태극기를 들고 뛰어나갔다』고만 말씀을 하셔서 아흐레만인가 매를 맞아 엉덩이가 퍼렇게 멍이 들어가지고 풀려나오신 경력을 갖고 계셨다. 어머님의 형제분들은 이 얘기를 하면서 외할아버님이 겁쟁이 어른이셨다고 한바탕씩 웃곤한다.
그렇지만 내 기억에는 이 외할아버님이 언제고 기세당당한 어른으로 남아있다.
내 나이 대여섯쯤이었을까? 서대문밖 애우개(아현)에 외갓집이 있었다. 가을이었던지 길건너 중국인의 꽃밭에서 과꽃을 따다가 그만 주인에게 들키고 말았다.
함께있던 누이동생과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외갓집 대문안으로 뛰어들어와서는 무얼 잘했다고 주인이 잡으러 온다고 외할아버님께 일러 바쳤다. 외할아버지는 큰 기침을 두어번 하시더니 대문밖으로 나가셔서 꽃밭주인을 웃으며 맞으신다.
『당신네 꼬마들이 우리 꽃밭 망쳐놔, 했어! 이거 장사꽃이야. 손해가 많아 해!』
아마 이런 정도의 푸념을 하였었겠지.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놀랍게도 호통을 치듯 꾸짖으시는게 아닌가!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었다. 서슬이 푸르던 주인은 외할아버님 말씀이 길어질수록 기가 죽더니 급기야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돌아가버렸다. 잠시후에 과꽃과 국화꽃 한 아름이 선물로 배달되어 온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었다.
나는 외할아버님이 무어라고 꾸짖으셨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남의 나라에 와서 꽃농사 하는 것을 우선 한국사람에게 고맙게 여겨라. 어린애들의 꽃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네가 꽃장사가 잘되는것 아니냐? 그러니까 저 애들에게 감사해야지 야단을 칠 수 있느냐?」이렇게 억설로 둘러대셨을까? 아무런 그때부터 나에게는 노인들이란 무어든지 해내는 신비롭고 슬기로운 도사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나의 어머님도 가끔 나를 놀라게 하신다. 고추 스무관을 심심풀이 삼아 꼭지를 다 따신 뒤에『금년 고추는 한 개에 꼭 10원이 먹혔구나!』이렇게 계산을 해내신다. 며칠전만 해도 꽃밭을 손질하시던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얘 아범아! 금년에는 붉은 장미가 작년보다 훨씬 많이 피는데…』『늘 그렇지요 뭘 금년이라구 더 많을라구요?』
『아냐 작년엔 추위에 꽃봉오리가 피려다 말고 안 피었는데 금년엔 벌써 백마흔송이를 넘겨피는걸』나는 그제서야 어머님이 꽃송이를 계산해 오셨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노인들이 점점 무서워진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시골노인들 얼굴은 검게 그을렀고 살갗은 까실하여 볼품이 없는 분들, 차간에 휘진 무명두루마기는 풀이 죽어 구겨졌고 동정에는 때가 묻어있는 시골 노인들, 그러나 한마디만 얘기를 나누면 나는 또 그분들의 어떤 슬기에 감탄을 하게 될 것인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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