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공현 대축일미사에 그녀는 안 보인다. 내가「그녀」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내리에 사는 50대 후반의 아줌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녀는「내리회장」이라 불려졌다. 여러 겹겹 쌓아 입은 때묻고 닳아진 옷들 위로 이(爾)사이가 이 한 개의 크기만큼 벌어진 입과, 세수 안한 얼굴위로 그녀를 더욱 우습게 보이게 하는 크고 검은 사마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말아 꽂은 꼬챙이가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안 보인다. 아마 내리회장보다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바보인 그녀를 빗대어 붙여준 별명임을 단번에 알 수 있으리라.
어느 따사롭던 봄날, 대영광송이 시작되었을 때 성가소리와 엄숙함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깨뜨린 사람은 내리회장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날은 달랐다. 헤벌려진 웃음 앞에 놓여진 꽃들, 진달래꽃묶음에 간간이 대나무 잔가지를 넣어 새끼줄로 꽁꽁 묶은 큰뭉치가 내 시선을 끌었다. 미사 후 꽃묶음은 수사님에게로 수여되었다. 그런 그녀를 볼 때 우습기도하고 한편 마음이 왠지 평안해짐을 느낀 기억이 새롭다.
30여분의 산길을 걸어, 미사에 생각나면 오는 그녀의 한쪽 손엔 비닐봉지가 꼭 쥐어져있다. 때와 땀에 절은 미사 보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날 성가집만이 그안에 늘 있다.
성탄 자정미사에도 내리회장은 왔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옷을 더 입고, 몸을 안 씻은지 오래되었던가 보다. 등이 가려워 의자받이에 비비는 모습은 안타깝기조차했다. 조금 후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긁어주는 어린여자아이가 있었다. 가까이 가면 악취가 나는 그녀의 등을 긁어주는 아이의 미소에서 스치는 한분의 얼굴을 보았다. 가장 비천하고 헐벗은 이에게 평화와 안식과 나눔을 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주위 사람들이 먹으라고 갖다준 계란 1백 개를 몽땅 큰 가마솥에 삶아서 먹고 있더라는 그녀, 내리회장. 그녀가 나보다 훨씬 천국의 문에 가까이 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내리: 산청군에 소재하고 있는 산골 작은 동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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