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의 풍습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좋은 재산이다.
귀한 이도 천한 이도 악인도 선인도 부모 형제들의 묏등앞에 서면 한결같이 숙연해지고 회한에 잠긴다.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창세기3ㆍ19)
어떤 영웅도 철인도 이 진리를 거부하지는 못한다.
올해 추석은 연휴속에 있었다. 잡다한 일상(日常)을 벗어던지고 성묘길에 올랐다.
실로 몇 해 만인가?
시간이 없다. 형편이 안된다. 핑계 하면서 내년으로만 미루어 왔었다. 추석날 합동 위령미사에 얄팍한 봉투를 드리밀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허전한 마음은 어쩔수 없었다. 천리 먼길을 달려 그날로 선산의 성묘를 끝내고 이튿날은 부산으로 나갔다. 용호동에 있는 천주교 묘지에 시누이 꼴롬바의 묘가 있다. 작년 초여름에 불우했던 이승을 끝내고 주님의 품에 안긴 시누이. 나는 그 알량한 산다는 문제를 내세워서 초상때도 일주기때도 참석치 못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조차 살아간다는 것 앞에서는 이다지도 나약하고 비굴할까?
용호동 묘원은 실로 명당자리였다.
다만 조금 우리들 마음을 어둡게 하는것은 몇년째 벌초를 안한 묘들이 군데군데 널려있는 것이다.
호걸도 초부도 죽음앞엔 평등한데 저 임자없는 묘들은 얼마나 쓸쓸할까? 살아있는 자도 죽은 자도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인데…
묘원 관리사무소에서 해결할 수 있을텐데. 각 본당마다 있는 연령회는 이런곳에 애덕을 발휘할 수는 없을까?
문득 서울 D동 교회묘지 관리회장 김 방지거씨 생각이 난다. 묘원 가장자리에 큰 계사를 짓고 그곳에서 살림하면서 넓은 묘원을 정원가꾸듯 한다.
연고자가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는다. 깨끗하게 벌초해 놓는다. 성묘갔던 사람들은 모두 그 정성에 감동되어 김 회장을 격려하고 돕는다. 가톨릭에는 행정력이 부족하다고 흔히 말한다. 묘원을 팔 때는 몇곱식 남기고 정지하고 역사하는 과정에서도 받을 돈 다 받는다. 묘비를 세우는과정에서도 관리사무소에 상당한 이권이 있는줄 알고있다. 그런데도 연고자 없는 묏등 들은 못 본 체 하다니…
망자들에게 부끄럽고 믿지않는 친척들 보기가 민망스럽다. 하늘을 쳐다본다. 뭉게구름이 꽃처럼 아름답다. 30년후에 나는 어디만큼 누워있을까? 아들이 넷씩이나 되니 벌초도 잘하고 성묘도 올테지.
오후 3시 태풍의 들판을 달리는 경부선 위에서 가만히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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