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은 사제식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노력을 하고있다. 그러나 아직도 관심이 부족한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학교의 시설로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운영비까지 외국신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우리 한국신자들이 빈곤한데다가 수가 적은 탓인가? 아니면 신자가 부족한 탓인가?
지난 추계 주교회의에서는 신학교 문제를 다루었다고 한다. 먼저 서울 대신학교 입학문제로서 문교부와 협의하여 지방대학 입학을 위한 예비고사에 합격한 학생에게도 입학자격을 부여하자는 것과 둘째로 서울 소신학교를 지망하는 지방학생들의 성적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1년간의 재수별과를 신설키로 결정했다고 하며 별과 신설에 필요한 비용은「로마」로부터 원조을 신청하여 해결키로 했다고 한다. 서울과 지방의 목자를 균등하게 양성해야 하는 반면에 도시와 지방학생들의 성적차이가 심하여 입학시험에서부터 문제시되는 현실을 놓고 볼 때 중요한 결정임을 부인할 신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사제식성에 있어서 당면하고 있는 근본문제는 도시와 지방학생의 실력차이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이 있다고 본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위하여 연구하고 대안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주교회의 결의내용에서도 나타나 있다고 본다. 재수별과의 신설비용마저 외국신자들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이 실정이야 말로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벌써 많은 원조를 외국으로부터 받고있는 한국 가톨릭 신학교가 계속 원조를 청했다는 사실은 한국교회가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교우들의 숙성과 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함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의 부족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를 인증하는 것도 앞날의 사제양성을 위하여 중요하지 않을까? 한국신자들은 그 정도로 빈곤하고 인정가 부족하단 말인가?
성지순례는 신심행사이었으며 일생에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비판할수는 없으나 참고적으로 언급한다면 순례단 백여 명이 1년간의 신학교 운영비에 해당되는 비용을 내고 다녀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지순례를 다녀온 신자들을 포함한 전체 신자는 순례단의 1만배나 되지 않는가. 한국교회가 가난하기 때문에 대신교와 소신학교의 운영비는 당분간 외국신자들에게 의뢰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시설은 국내에서 해결할수 있다고 보아야만 하지 않을까? 이는 비단 경제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 신자들의 인의와 관심에 대한 표식로서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신학교에 대한 성의와 관심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러므로 사제 양성에 관한 성의와 관심의 계발에 대한 문제를 다룸이 급선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신자들이 성소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기구와 희생으로써 협조해야 함은 대단히 중요하다. 훌륭한 사제가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신자들과 가정에서부터 서서히 양성되는 것이다.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는 가정을 예비신학교라고 표현할 만큼 신자들의 가정이 사제양성의 온상과 같이 중요함을 재확인했다. 가정과 신자들 사이에서 양순하고 겸손한 자녀교육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훌륭한 신학생이 뽑히지 않을 것이며 훌륭한 신학생이 가정에서 선발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닮는 사제는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재언하거니와 훌륭한 사제는 사제의 온상과 같은 가정에서부터 발생하여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부터 원만하고 희생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를 길러주어야만 훌륭한 인간으로서의 사제가 양성될 것이다.
현실사회도 교회에서와 같이 그리스도의 산 모습을 찾고있다. 그리스도만이 사랑과 정의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신자들 특히 교회의 지도자인 사제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가난한「베를레헴」에서 나시고「나자렛」촌에서 검소하게 사셨지만 인류를 구원하신 위대한 그리스도를 본받을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가정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울고 기뻐하는 이웃과 같이 기뻐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 있는 장래 사제는 먼저 인정많은 착한 형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가난한 이웃에게서 그리스도를 보는 참다운 신자부모의 표양을 본받지 않는 한 자선사업은 교회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이며 의무라는 공식회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제가 될 수 는 없을 것이다.
사제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좋지만 어떤 방법으로써 그리스도를 닮고 진리를 효과적으로 증거할수 있는 사제를 양성할 수 있느냐 하는 질적인 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다운 사목을 이행할 수 있는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서 먼저 신자들의 성소에 관한 보다 큰 성의와 희생이 요구된다. 사제양성에 대한 밝은 전망은 신자들의 성의를 계계하는데 달려있다고 본다. 그러면 신학교의 자립운영도 미구에 가능케 될것이다. 그보다도 성의있는 신자들의 가정으로부터 훌륭한 사제 지망자들이 양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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