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저명(著名)하지도 또 거룩하지도 못한 터에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일요한담을 맡아 원고를 써달라는 편집자의 청탁이 우선 나를 딱하게 한다.

그러고보니 평소「주일신자」구실밖에 못하는 나를 명색이 교리교사 과정을 이수했다는 죄(?)로 억지로 끌어「평신도의 날」강론을 시키는 일도 나를 딱하게 한다.

곧잘 있다가도 한순간의 치미는 울화를 못참아 그냥 판을 쓸어 버리거나 펜대를 찍어버리는 욱하는 내 성깔머리가 자주 나를 딱하게 한다.

정초년 으례 금년 1년 적어도 한가지만이라도 내 모병습관(毛病習慣)을 뜯어 고쳐보자고 다짐했건만 마지막 한 장 남은 칼렌다를 멍하니 바라다 보는 대림절(待臨節)은 내겐 항상 회한이 감도는 딱한 계절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삼권분립불가유」-즉 신앙심ㆍ사고방식 및 판단력의 세가지가 각각 따로 놀아서는 안된다는-을 주창하던 고 김익진옹의 익살섞인 경구가 때로 나를 겨냥해 오는것 같은 자책에 스스로 딱해진다.

『교회에 나가는 건 괜한 시간낭비야. 나는 내 맘을 믿고 살지』하는 E선배의 자신만만(?)한 호언과는 달리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고 또 바로잡으려해도 내 마음이 그리 쉽사리 휘어 잡혀지지 않아 늘 나를 딱하게 한다.

제법 혼자서는 하느님께 기도도 바치고 성사도 자주 보는 터이나 막상 집안식구나 주위사람들한테는 의외로 무심 냉정한 내 편협(偏狹)이 나를 딱하게 한다.

월례 간사회의(月例幹事會議)때마다 들어가 보는 꾸르실료회관 강당 정면엔「이 방에 들어오는 이는 누구나 위선과 가식의 껍질을 즉시 벗어 던져라」고 씌어있는데 그 방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즉시로 다시「위선과 가식의 껍질을 자의반ㆍ타의반으로 뒤집어써야 하는」나를 스스로 딱하게 생각한다.

수천명의 교우수를 헤아리는 서울도 실지, 우리 본당의「경향잡지」「가톨릭시보」 구독자가 실로 열손가락 미만이라는데는 명색이 출판인인 나를 딱하게 한다. 모처럼의 교우들끼리의「우정의 모임」을 보다 화기(和氣)있게 하고자 모임끝에 나누는 한잔의 술좌석에서 주책없이 부리는 어떤 형제들의 주사가 가끔 나를 딱하게 한다.

본당 활동단체의 모임에 으례 늦게 나오거나 빠지는 것을-몹씨 바쁘게 큰 사업이나 활동을 하고있다는 은근한 PㆍR을 곁들여-무슨 특권이나 권위연(權威然)하는 딱한 태도를 본다.

「로마」성년순례 길에 자그마치 103명의 순례단이 각각 1백여만 원씩의 비용을 자담하면서 참례할 수 있는 잠재적 저력을 지닌 한국교회가 소신학교의 재수별과반 유지비용은 교황청에 보조청구를 해야한다는 사실이 짐짓 딱하게 여겨진다.

영화나 TV를 보면서 작품연기로는 가장 고귀한 진리, 진정 숭고한 노력으로 꽃피는 사랑을 눈물겹도록 잘 표현하는 연예인 중 그 자신의 인간생활에 있어서는 더럽혀져 있는자를 대할때 몹씨 메스껍고 딱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일년내내 거의 무관심속에서 버려졌다가 성탄절날 하루동안에 쏟아진 풋선심으로 무더기 배탈이 났다던 S고아원생들의 퀭한 눈망울들이 자꾸만 연상되어 나를 딱하게 한다.

새해에는 내 자신에게나 주변에서 이런 딱한 이들이 제발 가셔지기를 기원하는 맘 간절하다.



▲지금까지 심재기씨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김태술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