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구칠오년의 성탄을 맞이하여 교우 제위와 모든 동포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2천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망하고 있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외국압제에서의 정치적 해방을 가져다 주는 위대한 분의 출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 구세주 예수의「베들레헴」탄생은 그와는 거리가 먼 의의를 가졌다. 그것은 성탄날 밤의 천사들의 축하노래에 잘 나타나고 있다. 즉「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는 그의 사랑받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위로는 하느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므로 영광을 드리고 아래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에게는 평화가 왔다는 뜻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예수의 탄생은 인류의 구원이오 사랑이오 평화인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의 성탄을 그와 같은 의미에서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그리하여 율법학자와 대제관들과 권력층들은 그를 모욕하고 추해하여 드디어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계는 과연 예수의 성탄을 얼마나 올바르게 맞이하고 있는가.
정말 생명의 구원으로 사랑과 평화의 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생활습관으로 카드의 교환이나 선물의 주고 받기나 먹고 마시는 환호의 행사로서 그치고 마는 것이나 아닌가.
성탄은 하느님의 말씀의 육화라고도 한다. 즉 하느님이 정말 인간의 육신으로 되셔서 그 당시의 인간사회에 적응해가면서 사람들의 사상과 심리에 따라서 만고불변의 진리를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가르치셨고 또 몸소 행하여 시범하셨다.
이러한 육화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는 그리스도가 맡기신 사명을 완수할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유구한 역사안에서 그리스도의 연장으로서 계속 그 시대와 장소안에서 새롭게 그리스도의 육화를 이룩해야 할것이다. 즉 그때와 곳에 적응해가며 알맞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하고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행해야 할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1970년대의 한국사회에 무엇을 맡고 무엇을 행해야만 그리스도가 오늘의 한국에서 육화 즉 성탄을 가져올수 있겠는가. 단순히 겉으로만 메리ㆍ크리스마스를 연발하고 일시적 동정심으로 불쌍한 사람을 위한 희사애긍에만 그친다면 이는 그리스도 성탄의 핵심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지상인류에 사랑을 주고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인간 본연의 존엄성(하느님의 모상)을 존중하고 또 하느님이 인간의 양심에 부어넣으신 정의에 따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항상 정의와 인간 존중이 수반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오늘의 사회가 가지각색의 인간 억압의 현상과 부정불의의 천태만상의 부조리가 난무하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인데 거기에 교회는 진정 인간 존중과 사회정의와 사랑을 조화있게 외치고 또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인가.
오늘의 교회는 초대교회의 사랑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하겠고, 한국교회도 박해시대의 선조들의 순교정신으로 부고하여 현실에 지나치게 안일함이 없이 언제나 불안한 나그네로서의 위기를 극복해가는 기품이 있어야겠다.
또 한편 예수의 성탄은 지상에 평화를 가져왔다. 그리스도는『나의 평화를 당신들에게 주노라』고 하셨다.
예수의 평화는 바로 하느님과 인류와의 화해요 모든 인간들의 보편적 화해를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잘못을 고백하고 그의 용서를 받고 인간들간에 서로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의 교환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 특히 한국의 정세를 볼 때 남북의 분단으로 민족간의 불화가 있을뿐 아니라 동족상잔의 전쟁의 위험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형편이고 그리스도 교회도 여러 갈래도 분열되어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우리 가톨릭교회 자체도 외형적으로는 평화한 것 같으면서도 내실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사이에 있어서 바람직한 일치가 결여되어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수 없다.
금년의 성탄은 특별히 화해의 성년으로 마감되는 성탄이다. 우리는 마땅히 더 한층의 경각심을 가지고 사랑과 정의와 화해를 통한 평화의 실행자가 되고 시범자가 되고 예언자가 되어야만 75년 성탄을 올바로 맞이하는 자세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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