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갑인의 새해를 맞이하여 먼저 성직자ㆍ수도자 및 평신도 제위에게 삼가 축복의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새해에는 으레 새로운 포부와 결심을 정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금년에는 어떤 것이 지향되는 큰 목표가 될 것인가? 한국 교회는 지난 번 주교 정례회의에서 새해의 여러 가지 사목 지침과 계획이 책정되어 있다. 그러나 전 세계 교회로서의 새해 목표는 역시 바오로 6세 교황의 새해 메시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본래 1월 1일은 평화를 기도하는 날로 정해져 있을 뿐 아니라 72년부터「평화」를 위한 교회의 캠페인이 시작된 이래 첫 해는「정의 없이 평화 없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둘째 해인 73년에는「평화는 가능하다」라는 캣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또 금년에는 세 번째로「평화는 당신에게도 달려 있다」고 선언했다.
또한 금년은「화해의 성년」을 맞이한 둘째 번의 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평화와 화해」를 이중적으로 강조하는 해라고 볼 수 있다.
교황의 메시지는 먼저「평화」의 근본 정신에 대해서 강조했다. 평화는 인류의 이상이요 하나의 확신이요 소망이요 인류의 종착점이기도 하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또 평화는 참된 권리와 정당한 정의의 포락, 모험과 희생의 기피, 타인의 지배에 대한 굴종 등과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평화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비천한 흥정이나 타인의 정당한 이익을 해쳐 가면서 이기주의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나 비열한 일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고 평화는 정의에 목말라 하는 마음으로 하는 용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재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교황 메시지의 뜻에 호응하기 위해서 한국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대사회적 대교회내적의 두 개의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현금 교회는 사회 안의 교회를 부르짖고 사회 질서의 확립에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 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만을 보더라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각 방면에서 걸쳐 숱한 부조리가 맹위를 떨치고 권력 구조와 국민 기본권 사이의 허다한 마찰은 날로 더하여 국민 전체 사이에 표면상으로는 무사평안한 것 같으면서 내면적 실상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과 긴장이 감돌고 있어 진실한 의미의 평화란 점차로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환경에 처한 교회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교회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고 갑니다. 내 평화를 당신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요한 14ㆍ27)라고 하신 바 그 평화를 세상에 일깨워 주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정의의 평화이어야 한다.「정의 없이 평화 없다」는 것이 그것을 말한다. 이러한 평화를 전하는 것이 용이한 일은 아니다.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마치 세례 요한의 욜단강변의 외침과도 같은 절륜적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또한 진정한 예언자직일 것이다. 진리와 정의에 입각하여 인간의 인간다운 평화를 자유와 사랑 안에서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근본적 사명인 이상 세속의 세력이니 물질주의의 사조에 좌고우면함이 없이 의연히 그리스도의 평화를 명시하면서 현세 질서의 확립에 적극 참여함이 요청된다.
다음은 교회 자체 안으로 눈을 돌려 보겠다. 오늘의 세계 교회는 과연 교회를 구성하는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 진실로 평화와 화해가 있는가. 참된 그리스도의 공동체 의식이 충만하고 있는가. 누구도 이에 긍정적으로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75년 성년을 선포함에 있어서도 특별히「화해의 성년」으로 주제를 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자체에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신 것이지만 먼저 그 제자들에게 그 모범을 통하여 증거하도록 평화의 유언을 남기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화해하고 나아 오라고도 지시하셨다. 그런데 하느님 제단에서 날마다 제사 바치는 우리들이 과연 서로 화해함이 없이 나오는 사람은 없었는지? 또한 미사 중에 서로「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정말로 서로 간의 불화나 분열은 없었는가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집엔 가족끼리가 서로 불목하거나 분쟁을 하면서 어찌 이웃 사람 즉 교회 밖의 사회에 대해서 평화를 외칠 수 있을까. 오늘의 한국 교회 현실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상호간의 진실된 공동체적 평화가 이룩되고 명실일치한 화해가 성립되도록 해야 하겠다. 예를 들면 주교와 사제단 및 사제 상호간에 성직자와 평신도 및 평신도 상호간에 있어서 진정으로 화해와 일치가 이루어져야만 교회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됨이 증거될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 상호간에 사목 면에서나 사회 참여 면에서나 의견과 행동 양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진리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자유롭게 사랑으로 행동하는 한에서는 가져올 수 있다. 비록 백가쟁명하는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한 목소리에 모이는 날에는 이른바 다양성 안의 일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움과 다툼과 분열이 있는 곳에 사랑과 용서와 일치를 가져 오는자 되기를 마음껏 기도하며 금년 새해의 한 해를 평화와 화해의 성년이 되도록 다 같이 협력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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