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마다 꺼림칙할 때가 있다. 왜 쓰는가 무엇 때문에 쓰는가 말이다.
청탁 때문인가 소신일 밝히기 위해서인가, 무엇을 알리기 위해선인가 직업 때문인가, 글 쓸 때마다 착잡한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어떤 분은 아예 발표를 삼가고 있다. 써 보아야 별것이 없다는 데서이다. 말이나 행동에서 신중을 기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대부분 청탁에 의해 글을 쓰게 된다. 주어진 제목에 생각나는 것을 피력해 본다. 그러나 왜, 무엇 때문에 쓰는가 그저 막연하다. 특히 이「일요한담」모양 주어진 제목 없이 자기가 제목을 정하고 쓴다는 것은 어렵다. 어느 면에서는 자기의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드러내는 자괴지심을 느낀다.
글이란 읽혀지기를 바란다. 또 글의 내용에는 긍정면과 부정면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비판할 때도 마찬가지다. 읽고서『아아 그렇구나』하는 긍정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그와 반면 부정도 있어야 할 것이다.
긍정면과 부정면 공히 가르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생각에 대한 긍정과 부정인데 누구나 긍정해 줄 것을 바라고 싶은 것이다. 부정은 귀에 거슬리기 때문에 불쾌할지 모른다. 그러나 글에는 긍정과 부정이 있어야 하며 어느 의미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비판이 더 교훈적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시시각각으로 뉴스가 쏟아진다. 전자 메디아의 발전과 더불어 주변의 소식과 세계의 소식은 순식간에 전해진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뉴스는 정상적이 아닌 것 변칙적인 것 비판적인 것 등등이다.
다시 말해 인간생활의 정상적이고 도덕적인 것에 부합되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부정적인 것들이 많다. 그러한 뉴스를 들을 때마다 세상은 어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다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불안도 감출 수 없다.
자유 사회의 매스콤은 흔히「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그대로 비춰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미담가화보다도 얼굴을 찌프리지 않을 수 없는 기사들이 채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교훈을 얻는 것이 있다. 부정적인 것들이 보도된다 해도 그것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정하는 자각이다. 그래서 안 되겠다는 경계이다. 때문에 그것도 교훈이 된다.「일요한담」이번으로서 소인의 차례가 끝난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지면만 소비한 것 같다.『왜』『무엇 때문』에 하는 생각은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망언다사』를 바랄 수밖에 없을 뿐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