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살아있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다「죽음」을 맞이해야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자 조형제님은 무언가 안도의 표정을 짓는듯 했읍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지금까지 삶의 초점을 거꾸로 맞추어 살아온 느낌이 든다고 말하였읍니다.
자기가 이렇게 맞이하게 될 죽음은 한번도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서 그동안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헛된 것에만 얽매여 바쁘게 살아왔을 뿐이라고 했읍니다. 그리고 이곳 성모병원에 와서 봉사자들을 통하여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이날 우리는 병실문을 나서면서, 이제 환자가 자신있게 눈을 감을 수 있게 된 것에 호스피스봉사자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읍니다.
이제 서로 많은 사연을 남긴 채 헤어져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읍니다. 떠나기로 정해진 하루 전날 그동안 봉사해 온「화요조」전원은 조형제님을 방문하였읍니다. 기도를 한 후 환자들에게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를 말씀하라고 했읍니다.
「주여! 이 죄인이」라는 성가와「어서 돌아오오」라는 곡을 원했읍니다. 그런데 이 두곡은 바로「죽음」을 예고하는 내용이었읍니다. 성가를 부르면서 환자와 부인은 물론 우리「화요조」봉사자 모두는 저절로 눈물이 나왔읍니다. 눈물을 계속 흘리면서 두곡의 4절까지 부르고 나니「이별 예식」을 모두 끝낸 느낌들이었읍니다.
울음도 그치고, 노래도 그치고, 깊은 침묵이 오래도록 계속 되었읍니다. 그런데 조현치 형제님이 문득 신부님을 한 번 뵙고저 했읍니다.
저는 부랴부랴 신부님을 모시러 사무실로 갔읍니다. 그러나 하필 그날 원목신부님께서는 피정을 가셨고 수녀님께서도 회의를 하러 나가셨다는 것이었읍니다. 모처럼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는데 면담을 하지 못해 몹시 안타까왔읍니다.
우리는 사무실 직원에게 부탁 말씀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읍니다.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 되었읍니다. 대구로 향할 병원차는 벌써 대기하고 있었읍니다. 병실의 짐을 챙기는데 무언가 허전함이 감돌았읍니다.
우리는 봉사자들이 병실을 방문하는 가운데 혹 마음을 거슬리게 한 것이 있으면 이해해 달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부인께서는『천만에요. 이 세상에 아무리 값비싼 보물이나 선물을 준다해도 호스피스 봉사자들보다 더 반갑고 고맙지는 않을 거예요. 돈주고 살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봉사자들의 정성스런 마음에 감동했어요』라고 말했읍니다.
짐을 싣고나자 조형제님이 병원차에 오르셨읍니다. 출발 직전에 호스피스 과장이신 루멘수녀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읍니다. 『다시 뵙기를 빌겠읍니다』라고 수녀님께서 말씀하시자 조형제님께서는 『글쎄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읍니까?』라고 대답을 잘 못하고 고개를 돌렸읍니다.
차는 대구를 향하여 병원문 밖으로 출발하였읍니다. 수녀님과 저는 차 꽁무니가 병원문을 빠져나가 보이지않을 때까지 멍하니 서 있다가 성당에 들어가서 무사히 도착하시기를 기도드렸읍니다.
그날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하루종일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읍니다 그 다음날 아침 대구의 조형제님 댁으로 전화를 해보았읍니다. 부인이 전화를 받는데 환자가「혼수상태」라고 했읍니다. 이 소식을 듣자 서울을 떠나시기 전에 환자분께서 직접 신부님을 찾았으나 뵙지 못하고 대구로 떠난 것이 다시 안타깝게 느껴졌읍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와 루멘 수녀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수녀님께서는 대구의 수녀님께 부탁하여 대세를 드리도록 해보겠다고 하셨읍니다.
며칠이 지난 후 루멘 수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읍니다. 대구의 이 아녜스 수녀님께서 조형치씨를 찾아 가셔서 간단한 교리를 하고 세례를 주었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주님의 품안에 안겼다고 했읍니다.
순간 저는 병원의 생활이 예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음을 깨달았읍니다. 고통과 시련의 병원 생황이 바로「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게 아파하시고 인내하시고 결국은주님의 품속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현존 장소」임을 알았읍니다.
조형제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결국은 세례를 받도록 해주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은 날아갈 듯 기뻤읍니다.
한달쯤 지난 무더운 어느날 오후 우리집에 전화벨이 울렸읍니다. 대구에서 걸려온 부인의 장거리 시외전화였읍니다.
장례식을 무사히 다 치루었다면서 이제 허전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어 전화를 해본다고 하였읍니다. 그토록 어려운 때에 영혼의 대화를 나누면서 끝까지 정성껏 보살펴주신 호스피스 봉사요원들을 잊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마음이 정리되는 대로 한 번 만나 뵙겠다고 하셨읍니다.
「주님! 조형제님께 영원한 안식과 영광을 주시고 유족들에게도 새 힘을 주시고 잘 보호하여 주시옵소서」<끝>
박차남 <수산나ㆍ서울 청담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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