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서울에서 어린 네 자매가 가난을 비관, 음독한 사실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가난에 시달렸으면 쥐약을 사이다에 타서 넷이서 나누어 마셨을까… 다행히 세 아이는 목숨을 건졌으나 올해 국민학교에 입학하려던 6살 막내는 끝내 숨지고 말았단다.
막내의 싸늘한 시신을 어루만지며 울부짖는 그 어머니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바라보기조차 민망스럽게 느껴진다.
누가 이 어린 네 자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기로 된 14세의 순미양은 달력을 뜯어 사인펜으로 쓴 유서에서『사랑하는 엄마, 아빠, 이젠 학비 걱정 마세요. 동생들아 미안해』라고 적었다.
아버지가 월25만원 월급을 받고 어머니가 파출부 일을 하면서 일곱 가족이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던가는 아이들의 일기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순미양이 쓴 2월 22일자 일기에는『오늘 선생님께서 육성회비 안 낸 사람 이름을 부르셨는데 내 이름이 들어 있어 창피했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말하니까 돈이 없어 못낸다고 하셨다』
둘째 정미양(12세ㆍ국교5)은 2월 17일 일기에서『졸업식에서 친구 미영이는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 나는 못찍었다. 엄마가 밉기도 했다』고 적었다.
얼핏 생각하면 왜 자식을 제대로 키울 능력도 못되면서 다섯씩이나 낳았는가 책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위의 넷이 딸이고 막내가 3살짜리 아들인걸로 봐서 아들을 기대하다보니 자녀 수가 많아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쨌든 현재 자녀 수가 적고 많은 것을 따질 겨를은 없다. 이미 다섯 명이 되었으면 부모가 일차적인 양육의 책임을 지고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부모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벌어야 일곱식구가 간신히 연명할 수밖에 없는 수입이고 보면 그 부모도 탓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국가나 기관단체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사람들이 형편대로 도와줄 수밖에 별도리가 없을 것이다. 의식주는 부모가 어렵게나마 해결하고 있으니 자녀의 학비를 돕는 일이 가장 요긴했을 것이다.
바로 순미양이 유서에 적은대로 어린 네 자매의 음독 원인은 엄마, 아빠에게 학비 걱정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학비가 없어 부모에게 걱정을 안끼치려 세 동생과 함께 죽기로 작정했다면 그들의 행위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 탓은 주위 이웃들과 특히 우리 교회에 돌려야 할 것이다. 교회가 성당에 오는 신자들만을 사목하기위해 존재한다면 교회의 존재 가치는 대수로울게 없다.
교회가 그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애환이나 어려움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다면 어찌「빛」이 될수 있고「희망의 등대」가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실천운동으로 벌이고 있는 한마음한몸운동이 요란한 구호로만 끝나버리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이번 네 자매의 불행을 거울삼아 우리 교회가 벌이고 있는 구빈 및 장학사업 등이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전개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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