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에 발생한 여의도 농민시위는 많은 문제점과 비판을 불러 일으킨 가운데 지금부터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큰 이슈 중의 하나로 부상되었다. 전국에서 1만5천명이 넘는 농민들이「수세폐지와 고추전량수매」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결과, 많은 부상자를 내고 차량과 나무들을 불태우는 재산상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또 2백여 명의 가담자들이 연행돼 조사를 받고 그중 7명은 구속되기도 했다.
이번 시위를 농민들 편에서 보면 다소간의 희생과 폭력이 불가피했지만 수십 년간 쌓여온 원한과 차별 의식을 분출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어느 정도의 실리도 거둘 수 있게 된 것을 자족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강압과 폭력에 의해 목적이 성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못하고 정당화될 수 없음을 재천명하는 바이다.
특히 이번 시위를 준비하고 모임을 가진 장소가 대전의 가톨릭농민회 본부이고 주체세력이 가톨릭농민회원으로 전해진 것에 참으로 우려와 걱정을 아니할 수 없다.
실지로 가톨릭농민회원들이 폭력적인 시위를 주동했는지의 여부는 각자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겠지만, 현재 드러나 바로는 그같은 인식은 불식하기가 어렵다.
만일 가톨릭이란 이름을 내건 농민들이 처음부터 죽창과 몽둥이,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해 시위를 벌였거나 그렇게 하도록 교사했다면, 그 행동을 어느 누가 정당한 것으로 평가해주겠는가? 언제부터 가톨릭이 목적 달성을 위해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한 적이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고 농민시위에 가톨릭농민회가 운동권이나 기타 불순세력들에 이용당했다면 결코 수수방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또다시 그러한 불상사가 재연되지 않도록 최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톨릭농민회로 인해 전체 가톨릭교회가 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하한 상황에서도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이 가톨릭일 수는 없음을 거듭 밝혀둔다.
혹자는 과거의 정권이나 정부가 농민들에게 저지른 원천적인 폭력에 대항해 그에 대응하는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지 않느냐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또 혹자는 신문기자가 필기구를 휴대하는 것이나, 의사가 주사기와 청진기를 담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과 농민들이 자연과 싸우면서 자기방어의 습성이 된 막대기나 연장을 들고 다니는 것이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의도 농민시위가 폭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사안 자체가 위급한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는 견해에 동조하기에 더더욱 폭력 사용을 용납하기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우리는 아기에게 젖 주는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당국의 처사를 너무나 한심스럽게 보지 않을 수 없다. 농민에게 불리하고 농민들이 여러가지 혜택에서 소외되는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진데 왜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문제를 해소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폭력을 동원하고 난장판을 벌이고 나면 요구를 들어준다는 전례를 언제까지 되풀이해서 보여줄 작정인가.
이번 농민시위에서 제기된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농협의 민주화를 비롯 농산물 수입에 따른 농민보호문제, 농촌 의식주 개선문제, 농산물 제값받기 등 산적한 농정(農政)을 펴나가는데 농민과 정부당국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절실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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