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에서는 수많은 갈등(葛藤)이 있는 것 같다. 욕망이 서로 엇갈리는 데서 갈등이 일어나고 인간이 가진 각종 권력 간에 갈등이 있고 인간 의무와 권리 사이에 생활 감정의 차이에서 개인 각자의 자만심의 충돌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기쁨과 고통 자유와 억압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때로는 인간 기억과 상상에서도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 사회뿐 아니라 갈등은 이 우주 안에서도 수없이 볼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우주를 존속시키는 힘인지도 모른다. 자연과학에서의 장력(張力)과 인력(引力) 등에서 우주 안에 있는 갈등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우주 속의 여러 가지 갈등 속에도「하나」와「다수」(多數) 간의 갈등은 빼놓지 못할 갈등 중의 하나라고 본다.
「하나」와「다수」가 아니며「다수」는「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크라테스는「하나」는「다수」이고 「다수」는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놀라운 명제다」. 왜나하면 어느 편을 주장하든지 공격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대 인간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하나」와「다수」의 문제인 것 같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취미에 맞는 직업을 갖고 자기 나름의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하는가 하면 실제로 살아보면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자기 나름으로 될 수 없고 또 자기 뜻대로 되기보다는 도리어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맞추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부모 형제자매 친구 선생님 직장 동료들이 모두 자기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나의 요구를 들어 줄 수도 있고 안 들어 줄 수도 있다. 여기서「하나」와 「다수」사이의 갈등 즉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 싹트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 가족 개인과 가족 전체 사이에 단체와 그 구성원 각자 사이에 직장과 개인 국가와 단체 국가와 가정 국가와 개인 사이에 국가와 전 세계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이러한 갈등에서 어느 한 편을 주장하든지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공격을 받게 된다. 가족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되어야 한다든지 한 사람의 가족 때문에 전체 가족이 희생되어야 한다면 어느 편이든지 잘못이 있고 공격 대상이 될 것이다. 사회단체에서 그 단체와 구성원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하나」무시하고「다수」를 주장한다든지「다수」를 무시하고「하나」를 고집해서도 안 될 것이다. 철학자들 사이에도「다수」는 없고「하나」가 있다는 사람이 있고 「하나」는 없고「하나」가 있다는 사람이 있고「하나」는 없고「다수」가 있을 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편이든 잘못이 있다.「하나」는 「다수」를 이루고 있고 다수는 하나를 위해 있다고 본다. 인간 사회에서도 어떤「집단이나 구성원 개개인의 자기 완성을 위한 공동선」이 필요하며 이 공동선은 국가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공동선의 추구가 개인 인격의 고귀한 존엄성을 해쳐서도 안 될 것이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 문헌에 있는 말씀이 생각난다.「사회 질서와 사회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복지를 목적 삼아야 하고 사무르이 질서가 인간 질서에 종속될 것인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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