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찬의사회 참여
사목헌장에 보면『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겨 주신 고유의 사명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질서에 관한 것이 아니고、교회에 정해주신 목적은 종교적 질서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종교적 사명에서 신법을 따라 건설되고 견고케 되어야 할 인간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직무와 빛과 힘이 나오는 것이다』 (42) 라고 되어 있다. 처음 들으면 종교적 질서와 다른 질서들 간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종교적 사명에서 현사회 건설에 이바지할 직무가 나온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어느 질서 안에 머무느냐」가 아니라「어느 질서에 관한 것을 하느냐」이다. 교회사명의 한계라기보다는 교회사명의 차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과 인간공동체를 논한다면 이 인간의 발전과 인간공동체 건설은 어떤 질서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질서와 관련된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분야는 각각 자기분수대로 인간발전과 인간공동체 건설에 기여하는 것이다. 종교적 질서에 관한 사명 또는 목적이 종교적 사명이며 이 종교적 사명도 그렇게 인간의 발전과 인간공동체 건설에 참여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에 의하면 교회의 사명은 복음선포 뿐아니라『현세질서에 복음정신을 침투시켜 현세질서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교회와 세계 안에서、영적 질서와 현세질서 안에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 (5)이다. 여기에서 현세질서의 개선은 구체적으로 인간의 사회생활 조건의 개선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목헌장의 표현대로『이 거대한 노력 그 자체가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한 것』(34)이다.
2、사회현실의 변화
(1)경제적 사회화
교회의 가르침을 보면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단죄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일 자본주의라는 것이 경제발전의 근본동기는 이윤이고、경제의 최고법칙은 자유경쟁이며、생산수단의 사유권은 절대적인 권리로서 사회적인 한계도 없고、의무도 없다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면、그렇다고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자본주의 체제가 다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거의 질적 차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본주의는 아직 이르다고 본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를 운운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를 폐지해야 된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한 경제체제로 변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본이 인간의 존엄성도、경제활동의 사회적 성격도、사회정의나 공동선도 고려하지 않는다면 노동 즉 노동자는 상품처럼 매매될 것이며 생산과정에서는 기계적 부속품처럼 취급될 것이다. 그래서 벌써 50여 년 전에 삐오 11세가 표현한 대로『생기 없는 물질은 공장에서 고귀하게 되어 나오지만、인간은 거기에서 타락하고 그 존엄성을 잃는다』.
(2)정치적 민주화
공동선이『개인과 가정과 단체가 보다 와전하게 보다 쉽게 자기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사회생활의 모든 조건들의 총체』를 의미한다면、정치공동체는 바로 그것을 실현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집권자나 집권당이 공동선을 도외시한다면、국민을 위한 집권자나 집권당이라는 말이 실제로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한다는 보장이 되지 못할 것이다. 공동선이 도외시되면 당리나 집권층의 이익만을 위하여 권리행사가 남용된다는 뜻이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국민을 위한」정치인이나 정당만으로는 실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보장될 수 없으므로「국민을 위한」정치는 동시에「국민에 의한」정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국민을 위함과 동시에 국민에 의한 정치는 현재의 형식화된 민주주의로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수가결의 메카니즘에서 국민의 의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세력의 의사가 반영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소위 배후 조종세력이다. 마치 국민들은 그들의 대의원들에게 서명만한 백지를 맡겼는데 그들은 국민을 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을 반대하여 그 내용을 정하는 경우가 있듯이….
형식적 민주주의의 병폐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시한다는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민 민주주의 나라에도 마찬가지다. 이론상 노동자계급의 당인 공산당이 노동자들을 위하여 있으나 항상 노동자들을 위하여 정치를 한다는 보장이 없으며 노동자들을 반대하여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3)문화적 다원화
문화라고 하면『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연마하고 발전시키는데 이용되는 모든 것』이라고 광의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문화는 인간 인격의 전체적 완성을 지향하며 단체와 인류사회 전체의 행복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공동선을 도외시하는 사회에서의 특수계층이 지배할 필요성에 의하여 문화를 변질시키고 있다. 즉 사회적으로 집배계층에 속하는 이들은 그 지위를 확보하고 견지하려고 한다.
지배계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비판」이다. 어떻게 비판을 막을 것인가? 우선 비판을 금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판을 못하게 하려면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비밀리에 해야 한다. 그러자면 이중구조가 필요하다. 공식발표 따로 있고 내막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비판을 막을 수 없다.
다원론을 배제하고 모든것을 일원화해야한다. 어느 권력의 지배이든 이것을 필요로 한다. 이것을 위한 가장 효과적 형태는 군대조직 형태이다. 상명하복의 체제만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이 조직과 형태의 골수는 획일주의 사상이다. 바로 이러한 문화가 인간을 기성제품처럼 만드는 것이다. 이 인간은 상명하복의 체제에서 기계적 부속품처럼 작용할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기 위하여 그 이상 더 효과적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민족통일 방안의 정치적 결정에 전제되면 동시에 병행된다고 보는 통일문제의 종교적 관점에서 남한교회의 사목을 북한공산주의에 알리고 그 공산주의를 이해하며 동시에 남북한의 경제적 사회화、정치적 민주화、문화적 다원화를 통하여 민족통일에 민족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춘호
<神父ㆍ서강대종교학과>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