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천도교 수운회관에서는「민족화해 종교인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 선언에 참여한 종교단체들은 천주교를 비롯해서 개신교、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로서 남한의 주요 종교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 선언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서 각 종단의 대표적 지도자들과 일반 인사들이 서명했고、이로써 이 땅의 종교인들은 일치된 모습으로 민족의 화해를 추구하길 호소했다.
이 선언에서 종교인들은 먼저 민족 분단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확인하고자 했다. 민족 분단의 과정을 살펴볼 때 분단의 직접적 책임이 종교ㆍ신앙인들에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종교인들은 분단 상황을 묵인하고 동조까지 했었던 지난날의 생각을 겸허히 반성함으로써、민족 분단의 책임이 상대측에게만 있었던 것으로 인식해 왔던 종전의 견해에 큰 수정을 가했다. 종교인들의 이러한 자세는 민족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자세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선언에서는 통일지상주의에 대한 경계를 분명히 해주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통일을 지상의 목적으로 생각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통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선언에서는 통일은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평화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며、통일운동은 평화와 협동을 애호하던 민족문화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의지 때문에 이 선언에서는 통일이란 개념보다는 화해라는 개념을 더 크게 강조했던 것으로 생각되며、통일의 방법까지도 평화적 방법이 되어야 함을 선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선언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를 다질 수 있는 구체적 실천강령들을 제시하고 있다. 즉、남북 종교인의 자유로운 방문 교류와 순례를 추진하고、남북 종교인의 평화 모임을 개최하며、분단된 민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대화할 수 있는 평화회담의 건립이 여기에서 제안되었다. 또한 분단된 민족의 마음에 평화를 심을 수 있는 평화교재를 공동으로 개발해서 남북의 각종 교육기관에서 사용하기를 제안하며、이 모든 일들의 추진을 위한 남북 종교인 협의체를 상설해서 운영하도록 제창했다. 이와 같은 구체적 실천강령이 남한의 종교 지도자와 신도들에 의해 공동으로 제안된 것은 초유의 일로써、이 강령의 실천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선언의 목적과 선언서에 제시된 주된 내용에 대해 적극적인 찬동을 표하고자 한다.
그런데、여기서는 이 선언과 관련하여 제시되었던 일부의 문제점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이 선언은 북의 종교인을 직접적 대상으로 한 선언이다. 그러나 남북의 사회 구조가 가지고 있는 차이점 때문에 북에도 남한과 동등하게 신앙의 자유와 종교인의 활동이 보장되어 있는가라는 문제점이 있다. 북한의 종교계가 처해왔던 객관적 상황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북의 사회도 변동하는 사회이며、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는 남북한의 동시적 변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선언은 남북 종교인의 동시적 각성과 새로 남을 촉구하여 민족의 화해를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남한의 종교ㆍ신앙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어 민족의 화해를 위한 초석이 되고자 할 때에는 위의 문제제기에서 드러날 수 있는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의 종교인에게 화해와 재일치를 호소하는 남한의 종교인 상호간에 화해와 일치를 우선적으로 다져가야 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고유한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고、자신의 신조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리 강한 종교신앙인들의 화해와 일치에는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신조는 인간성의 계발과 인격의 완성 및 인류의 평화를 공동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타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이 가능한 것이며、이 보편적 가치의 수행을 위해 종교 간의 대화와 협조가 요청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의 종교 신앙인들도 상호간의 신뢰를 더욱 다져 나가고、인류와 민족의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며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 자세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견지할 때 북의 종교인과 남북에 살고 있는 6천5백만 민족구성원을 향한 우리의 호소도 실효를 기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족화해 종교인 선언」에서 제시된 실천강령의 수행을 위한 후속적 노력이 구체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선언은 선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그 선언을 실천하는 구체적 행동을 통해서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실천 강령의 구체화를 위한 노력이 이 선언에 참여한 6대 종단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신앙인들에게서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 교회 자체 안에서도 이 강령의 실천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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