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나사업가연합회에서는 1월 마지막 주일인 27일 제7회 구라주일을 맞아 전국 신자들과 단체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하고있다. 나병은 나균에 의하여 감염되는 단순 전염병이지 유전병이나 천형병이 아님이 밝혀졌다. 조기발견 조기치료하면 쉽게 고쳐진다. 그 치료 방법도 반드시 격리치료나 입원 치료가 아니고 재가치료가 원칙이라고 한다. 구약의 역사에서 보면 나병자는 마치 천형자로서 죄의 벌처럼 처우 당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약의 시초부터 예수께서는 나병 환자를 가장 불쌍히 여기시는 대상자로서 등장시켜 애원하는 나병자를 측은히 여기시고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깨끗하게 되시오』하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환자는 곧 증세가 사라지고 깨끗이 나았다는 기사가 공관복음화서 각권에 나타나 있다. (마8ㆍ1~4 말 1ㆍ40~45ㆍ루 5ㆍ12~16) 이를 보더라도 예수께서는 나환자를 옛날처럼 불구자로서의 격리불가촉의 대상에서 친히 손을 직접 갖다 대시는 인격적 구호의 상대자로 해방시켰도 또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이신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계에 약 1천 2백만의 나환자가 주로 후진국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8만 명으로 추정되고 그 중 3만 8천 명이 정식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한 환자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에 대해서 가톨릭나사업가연합회는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즉 등록된 3만 8천 명의 환자 중에서 그 3분의 1정도는 가톨릭계에서 돌보고 있어서 병원을 포함한 9개소의 진료소, 5개의 이동치료반, 39개의 정착장이었다.
이러한 구호시설은 정부기관이나 다른 종교단체의 그것에 비해서 결코 작은 비율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업에 투입된 재원을 보건대 주로 외국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실태로서 작년 일 년만 하더라도 외원액이 수억 원에 달하고 있는 데 비해서 구라주일 성금이 2백 70여만 원에 불과했고 다만 한국은행 릴리회원 중심의 회비가 1백 70만 원에 달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만약 신자 한 사람이 10만 원씩만 하더라도 8백만 원은 될 것이다. 아니냐는 질문은 이해할 만한 안타까움에서 나은 것이다. 금년도 나사업가연합회의 계획은 나환자들의 입원 치료를 비롯해서 39개소의 정착의 완전 자활 대책 예방 대책 무의무탁한 불구 나환자의 수용보호사업 및 그들의 자립을 위한 기술 교육, 취업 알선 등 당면문제와 장래를 내다보는 적절한 대책방안이 모색되고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업들을 수해암에 있어서는 희생적 봉사정신과 사회사업의 전문가들의 정신적 인적 요원이 필요함은 물론이겠지만 또한 이에 수반하는 물질적 재원의 보급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그 절대액이 외원에서 나오고 국내 교회의 부담 액수는 그야말로 구우일모격에 불과하다는 것은 실로 한탄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정말 하느님의 사랑 형제애, 숭고한 인간애가 있다면 이럴 수 없지 않겠는가? 안양에 있는 성 나자로 마을만 해도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 창설된 것으로서 이곳을 근거로 구라사업을 벌이던 거룩한 요셉ㆍ스위니 신부늬 업적을 이어받은 알렉산드로 이경재 신부의 불철주야의 활약은 실로 눈부신 바가 있다. 각양시설의 신설과 개량은 물론 정착자들의 보호 선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원도 대분분이 외국에서 오는 후원에 크게 의존되어 왔고 국내에서도 우리 교회 밖에서 예상 밖의 성원을 받고 있는 실정은 우리 신자들에게 하느의 커다란 경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 간에도 열성적인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나자로돕기 회원들이 점차로 증가일로에 있다는 사실을 앙각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성주(星州) 나환자 마을의 성베네딕또 수도회가 인수하여 성신원(聖信院)을 설립하였는데 독일인 디오메테스 수녀의 헌신적인 사랑의 봉사활동과 성베네딕또회의 지원으로서 오늘은 2백 30여명의 환자 정착민이 양계 5만 수ㆍ양돈 1백 20여두ㆍ한우 20여두를 소유한 착실한 자활의 터전을 구축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와 찬사를 아낄 수 없다. 그러나 이것 역시 외국인만의 손으로 이루어지게 맡겨둔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 신자들에게 하나의 자극이 되어야 하겠다. 이외에도 나환자들 위한 구호사업으로 훌륭한 업적과 아름다운 이야기 거리가 그리고 나환자 자신들의 자립을 위하는 피나는 노력에 얽힌 흐뭇한 미담들이 많다. 이 기회에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구호의 손길을 뻗쳐야겠다. 우리는 가장 미소한 자에게 베푸는 것이 바로 예수께 바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거지 라자로와 부자의 이야기(16ㆍ19 이하)를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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