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을 상대로 구걸 행각이 한창이던 시절에 구라파 유학을 하고 온 어느 사제의 경험담이 또 오른다. 사제는 어느 독실한 신자의 가정에 초대를 받았다. 사제의 얼굴과 손을 뚫어지게 살펴본 그 집 꼬마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사제가 그렇다고 대답하자『문둥이가 아니네』하더라는 것이다. 그 사제의 곤혹은 바로 약간의 구호금품 때문에 한국인을 모두 문둥이로 인상 지워 준 구걸 행각의 보였다.
▲지금 국내는 한반도의 식민통치를 미화시킨 일본 다나까 수상의 발언으로 분노에 찬 여론이 들끓고 있다. 다나까는 지난 24일 중의원에서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 가운에『지금도 한국인의 마음 가운데 심어 놓은 것은 일본이 김(海苔)의 재배를 가르쳤고 특히 일본의 의무교육제도는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훌륭한 일인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적인 것보다는 정식적인 것 즉 생활 가운데 뿌리를 박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는 등의 망언을 늘어 놓았다.
▲다나까의 이 망언은『일본과 한반도의 합방시대는 길게 끌었지만 그 후 한국 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때…』라는 전제로 시작된다. 이 전제는 다나까나 만난 한국 사람의 의견이 그렇다는 뜻이 아닌가. 도대체 얼마나 저자세로 굽신거리며 구걸 행각을 벌였기에 이 같은 망언이 수상의 입에서 발설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다나까의 이 전제는 문둥이로 오해 받은 그 사제의 곤혹과 꼭같은 곤혹을 한국사람 모두가 당하게 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 즉 생활 가운데 뿌리를 박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는 말은 또 무슨뜻인가. 일본의 서부 경제권에 한국이 들어 있다는 소리와 함께 경제적 침략이 한창 말썽이 된 적이 있기 때문에 다나까의 이 같은 발언도 역시 예사로 들어넘기기에 어렵다. 발언 자체를 뜯어보면 경제적인 것보다는 이제 한 단계를 높여 어떻게 하자는 뜻이 되지 않는가 말이다.
▲36년 간의 압제와 수전에 멍든 한국인이 다나까의 이 발언에 격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막벌이꾼 같은 다나까나가 한 발언이라 하더라도 그 격이 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된 것은 이조가 부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일관계가 호평등의 원칙하에 국교가 정상화된 지금에 와서 침략근성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또 다른 인과의 보가 아닐까 하여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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