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보도에 의하면 각 교구 가톨릭학생연합회 회장들로 구성된 전국 회장단 산하에 사무국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학생회 신임총재 황민성 주교의 구상에 따라 마련됐다는 전국 학생 사목 계획에는 전국 담당 사무국을 서울에 설치하고 제반 기초 자료 수립과 지도자 교육을 실시, 75년부터 전국적인 가톨릭 학생운동을 정상화할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계획과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를 대충 살펴보면 한마디로 지난 1971년 1월 이전까지의 전국 가톨릭 학생 총연합회 체제를 거의 그대로 부활시키겠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먼저 총연합회가 헤체된 이유와 그 기능을 대신할 전국 회장단이 구성된 경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발단은 1971년 2월 각 교구에서 학생회 사목을 맡아왔던 지도신부들이 학생회 지도신부단을 구성하고 ①총연합회 사무국을 학생회 기본 조직에서 분리시켜 ②지도신부단이 운영하도록 결정한 데서 비롯되었다. 지도신부단의 이러한 결정은 학생 지도를 좀 더 효과적으로 잘 해보겠다는 애정에서 우러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생회 사무국을 학생회 기본 조직에서 분리시킨 것은 그 이유야 어떻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조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가톨릭학생회는 가톨릭학생이 주체가 되어 가톨릭 운동을 벌이고 그 사무국은 그 운동을 위해 사무적인 일을 뒷받침해 주는 학생회 자체의 보조 기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리가 이처럼 자명한데도 불구하고 사무국을 학생회의 기본 조직에서 분리시켜 지도신부단이 운영케 함으로써 사무국은 결과적으로 학생회의 상위 기관으로 격상되고 말았다. 이렇게 격상된 사무국은 독주하기 마련이고 그 독주는 학생들의 불만을 유발시키고 동시에 지도신부단에 대한 반발로 확대된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드디어 72년 6월에는 지도신부단이 해체되었으며 8월에는 총재주교가 지도신부 회의를 소집, 총연합회를 없애 버리고 전국 회장단 제도를 채택하게 되었다. 그 후 지도신부들과 학생 대표들은 사무국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키로 했지만 예산 없는 사무국이 존립될 수가 없었다. 이 같은 사태 발전은 지도신부들이 너무나 자상한 어버이 같은 노파심에서 학생들의 자율 역량을 무시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二)
가톨릭 학생운동이 어제 오늘에 시작된 운동도 아닌데 이처럼 원점에서 맴도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교회가 학생 사목에 대해 결과적으로 너무 등한시하거나 무관심한 탓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운명은 청년의 교육에 달려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국가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운명도 젊은 학생들의 사목에 달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교육 능력이 있고 또한 사명을 가진 인간 공동체」인 교회가 교회의 희망인 청년 학생들에 대해 그 진의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무관심한 듯한 자세는 지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청년 학생들은 왜정시대와 8ㆍ15 광복, 6ㆍ25 동란 등 숱한 격동기를 겪는 동안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기성세대에 못지 않게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은 지난 1971년 2학기부터 철무령, 비상사태ㆍ계령ㆍ휴교령ㆍ조기방학 등등의 학원 외적 또는 내적 요인으로 정상적인 학창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연속 속에서 학생들은 계통적인 학문을 제대로 닦을 수 없고 정신적인 갈등와 방황이 날로 심화되어 가는 것이 현황이다. 이 같은 현실이 구원의 신비를 인식시키고 인간 완성을 추구하는 교회의 학생사목 기능을 더욱 촉구하고 있음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특히 지난 1971년부터 지금까지의 학생사목 실태는 교회가 마치 학원의 외적 실태는 교회가 마치 학원의 외적요인에 덩달아서 모든 것을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 느낌마저 없지 않다.
(三)
학생회 총재주교가 이제 와서 다시 전국 담당 사무국 설치문제를 구상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교회의 학생사목 정책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종교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은 참으로 밝은 측면이 아닐 수 없다. 경북대학교 권규식 교수가 조사한 한국 대학생의 종교관을 보면「종교의 가르침은 도덕적으로 탁월할 뿐 아니라 인간의 동포애를 앙양시키므로써 인간에게 필요하고 귀중한 것」으로 보는 대학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학생들의 태도가 이렇고 젊은 학생이 교회의 희망임을 인정한다면 종전과 같은 교회의 예산 타령은 교회의 사명의식을 의심케 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한편 학생들은「종교는 인간생활을 他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족케 함으로 인간은 종교생활을 해야 한다」는 설문에는 긍정적인 학생이 생리가 종교의 가르침이 인간에게 필요하고 귀중함은 인정하면서도「해야 한다」「他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이란 억압적인 용어에 어떤 저항의식을 느낀다는 것을 웅변한다. 이 같은 결과가 주는 교훈은 교회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식으로 학생사목에 임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거의 전적인 자율을 인정해 주어 타력교육보다 자력교육에 힘을 쓰는 방향으로 사목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학생사목의 실패 원인은 사목자들이 일반 대학생들의 생태를 모름으로 해서 학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숙한 대화로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교회가 무엇보다 진력해야 할 것은 학생사목 전문가의 양성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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