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에 대한 논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항상 인간 사회의「다툼」의 원인이 되었고 또 되고 있다.
「정의」에 대한 논쟁을 가장 잘 말하고 있는 철학자는 플라톤인 것 같다. 그의 저서「국가론」과「고르기아스」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쿠스사이에, 또 소크라테스와 카리클레스 간의 토론에서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권력과 정의에 대한 논쟁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의 논점은 권력이 정의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반대로 권력도 틀리게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 사이의 논쟁이다. 소크라테스에게 반박하던 카리클레스가 말한 대로『정의란 강자가 약자의 소유를 강제로 빼앗고, 우수한 자가 열세한 자를 지배하며 뛰어난 자가 못난 자보다 더 많은 것을 갖게 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정의가 인간과 국가의 유용성(有用性)에 의해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 사이의 끊임없는 세기적 투쟁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현대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신문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소수의 정예 엘리트에 의해 행정부가 움직여지고 있고 다수의 사람은 소외 당하고 있다고 그 해설은 주장하고 있다. 소수의 정예 엘리트는 우수한 자요 뛰어난 자로 볼 때 미국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논쟁도 결국은 정의에 대한 논쟁에 귀착시킬 수 잊지 않겠는가. 소수의 정예 엘리트가 우수한 자이고 뛰어난 자로서 열세인 자와 못난이보다는 세계와 국가의 모든 일을 더 잘 알고 이끌어갈 수 있는 것만은 사실이 겠지만 문제는 이들 소수의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아느냐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이냐 즉 어떤 점에 우수하고 뛰어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즉 다수의 사람이 그들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선(善)한가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볼 때「정의」의 문제는 결국 선(善)의 문제로 귀착된다. 그래서 성 토마스는 정의문제를 다루면서 인간의 선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인간 본성의 선이란 자연이 구성되는 원리들』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간 위주의 정의를 부르짖을 때 어느 편이고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없을 것이며 자신있게「정의」라고 내세울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우주를 지배하더라도 인간도 우주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인간도 토마스의 말대로 우주를 구성하는 원리들에 입각해야 그것이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노도 그의 고백록에서 이러한 정의를 「진정한 내적 정의」라고 하면서 이 정의는「인간의 관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극히 엄정한 율법에서 쫓아오는 것으로 지방과 시대를 따라 그 지방 그 시대의 습속이 구성되는 것은 바로 이것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언제 어디서나 변함이 없음을」자기는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착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받드는 정의가 하느님의 명하는 모든 것을 보다 드높고 뛰어나게 다 지니고 있고」또「어느 부분에도 변함이 없을지라도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나갈 수 있음을 알고 있으니 정의를 부르짖는 모든 사람이 선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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