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더니 어느새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문자 그대로 백설양춘, 힘없는 눈발이 멋쩍게 느껴지고 먼 산 봉우리엔 흰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지만 햇빛은 한결 따뜻해졌다. 얼어붙었던 대지도 어쩔 수 없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고 양지 바른 흙 속에선 봄 냄새가 풍긴다. 길고 음침하던 겨울의 잔재들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메마른 가지마다 수액이 흐르기 시작하면 낡은 말뚝도 푸른 빛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 같아 보인다. 자연의 봄은 이렇게 용솟음치는 생명과 부푼 희망에 차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대지에 발을 딛고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으면서도 예년과 같은 봄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계절상으로는 봄이 돌아왔건만 동장군에 대한 공포감은 내리지 못한 채 석유가 몰고 온「현대판 춘궁」을 겪어야 하기 때문일까? ▲동결과 억제에 묶여 있던 물가의 고삐가 하필이면 입춘날에 풀리면서 현대판 춘궁기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이제「주유종탄」을 내세우며 외쳐대던 화려한 구호가 성양가처럼 들리던 시대는 겨울이 지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생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이 위기는 예전처럼 농촌만이 겪는 보릿고개도 아니요 봄이 지나면 끝날 것도 아니기에 모든 이가 봄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될 것 같다. ▲봄은 대자연에 생명의 경이와 신비감을 일으켜 주는 계절이다. 특히 수회력에는 이 신비가 잘 나타나 있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사람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교훈과 희망과 생활 지침을 제시해 준다. 봄은 예수의 십자가를 준비하고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다. 이달 27일부터 40일간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는 4순절이 시작된다. 신자들은 그동안 특별한 기도를 드리며 단식도 하고 금육도 하는 절제를 통해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다. ▲썩은 뿌리에서 움이 트는 생명의 경이와 부활의 신비를 터득한다면 현실적인 삶의 고통이 단순히 고통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고통은 부활을 약속하는 복된 수난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고통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어떤 의지로 극복하느냐에 따라 엄동을 이겨내고 기지개를 켜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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