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어떠한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계속 전진해 가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에는 반드시 그 시대의 문화를 대표할 만한 문화적 유산들이 있게 마련이다. 문화 민족은 그러한 역사의 발자취를 길이 보존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러기에 미개한 선사시대의 문화유산은 단편적으로 남아 있어서 그것들이 문화가 발달된 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보존되기에 이른다. 미개한 나라에 문명의 햇빛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문화유산이 남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역사를 답습할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무수한 문명을 낳았고 지금도 계속 낳고 있으며 미래에도 역시 새로운 창조적 노력을 계속해 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이나 문화의 창조는 결코 일조일석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선인들이 남겨 놓은 문화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리듯이 해서 이룩된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의 유산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은 문화민족의 자랑이며 또한 이 유산을 후세에 넘겨줄 사명을 완수하는 일이라 하겠다. 만일 그것을 게을리 한다면 그 민족은 문화민족의 대열에서 스스로 제외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단체로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순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2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의 일익을 차지하는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2백 년 역사의 문화유산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기에서 다시 되풀이해서 논할 필요조차 없는 자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솔직히 말해서 이 점에 대해서 너무나도 등한히 하고 있다는 인상을 씻기가 어렵다. 지난주 본보(901호)에「순교 선열 유품 찾아 5년」이라는 제하에 세 분 사제께서 사료수집을 위해 순교 선열들의 유품을 발굴키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그 일은 1969년 9월 순교자 유품 현상 모집시에 그렇게도 많은 유품들이 쏟아져 나온 데 자극을 받아『앉아서 없어져 가는 유품들을 안타까와 할 것이 아니라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서자』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분들의 노고와 정성은 주님께서 크게 기려 주시겠거니와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안타까움을 말하자면 찾아내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있는 것을 보호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교형 제위들이 인식해 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특히 유품만이 아니라 현대 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고전적인 건축물이며 무수한 애환이 담겨져 있는 옛 건물(특히 오래된 성당)들이 노후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도 주의를 기울였으면 싶다. 오랜 세월 동안 춘풍추우에 시달린 교회 건물이 풍화작용에 의해 서서히 와해돼 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요즈음과 같이 각종공해현상이 심한 시대에 있어서 도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건물은 그러한 풍화작용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어 이에 대한 조속한 대책이 긴급히 요청되고 있다. 무수한 차수의 매연과 그 진동으로 인한 피해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벽돌 건물의 경우 이 진동에 의한 와해는 너무나도 치명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벽돌은 위에서의 압력에는 강하나 진동에는 가장 약하다)특히 과거 우리 교회의 건축물이 거의 벽돌에 의한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것을 그대로 넘길 수만 없는 긴급한 일임을 다시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일례로서 서울 명동대성당의 경우를 살펴 보자. 명동대성당이 건립된 지 금년이 76년째인데 그 벽돌의 산화현상의 템포가 급격하게 빠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런데 그 대성당 보수공사가 1년여의 시일을 끌었다는 사실은 보수 공정의 어려움에서만 기인된 것이 아님을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일이다.
문제는 교회 당국의 관심과 신자들의 각성이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의 신앙을 길러보고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준 우리 교회의 건축물에 대한 애착심과 존경심을 갖고 교회 문화재 보호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이에 대해 적극적인 호응이 있어야만 할 줄 안다.
그러기 위해 전국적인 범위에 초교구적으로 교회 문화재 보호위원회를 조직하여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있기를 제의해 보고자 한다.
우리 순교자들의 손때가 묻은 유품들과 우리 조상들의 신앙을 지켜 주던 건물들에 대한 애착심과 존중심은 곧 앞으로의 교회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크나큰 계기가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교회문화보호위원회의 조직 발족은 긴급을 요하는 과제임을 다시 한 번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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