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가 살해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방부의 보도였다. 대남방송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믿었다. 그러나 그 보도의 근거인 대남방송을 믿은것은 아니다. 대남방송중에 믿을만한 것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다만 국방부장관이 국회에서 발표했기에 우리나라의 정보내지 첩보정책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그 보도를 믿었던 것이다.
얼마후에 김일성이는 건재하다는 보도에 실망했다. 김일성이가 죽지않고 살았기에 실망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이 정보정책의 허약성과 우리나라 보도의 허구성에 실망한것이다.
이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의 정신자세에 이상이 있음을 보여준 좋은 예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직책은 돈벌고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만 있는것이 아니다.
이나라 이 사회를 내실있게 발전시켜서 국리민복을 위한 길을 닦는데 있다는것은 삼척동자라도 알고있는 진리가 아닌가. 더구나 장관급의 정치인들은 우선 애국하는 마음자세가 없다면 그자리에 하루도 있을수 없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요즘 거의 날마다 일어나는 데모사태를 보면 파괴ㆍ살인ㆍ방화등으로 일관한다. 데몬스트레이션이라고하면 우리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데 그 본질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해서 이사회에 알리면 그것으로 끝내야 한다.
글쎄, 젊은 학생들은 과격하고 근시안적이고 미숙해서 그렇다손치더라도 신성한 국회에서는 왜 가끔 상대방을 치고 받고 파괴하는 난투극이 벌어지는가. 그들은 배울것을 다 배우고 성숙한 인간들일뿐아니라 민주주의 사상에 젖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아닌가.
이 모두가 나만이 제일이고 나의 의견을 반대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나쁜사람, 비민주적 사상을 가진사람, 없어져야 할 사람이라고 취급하는데서 결과된 상황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극단의 이기주의의 결과임은 알아야 하겠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사상이 뿌리박고 있는 한 민주주의 실현은 요원한 일이다. 나의 인권만이 귀중한 것이 아니라 남의 인권, 우리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나만이 자유를 누려야하는것이 아니라 남의 자유를 위하여 나의 자유의 제한을 받을줄도 알아야한다. 그리하여 나의 의견을 제안하고 남의 의견을 넓게 수렴하고 거기서 나오는 결론을 종합하는 정ㆍ반ㆍ합의원리하에 살줄아는 사람이라야 정의ㆍ평화ㆍ민주등을 말할 자격이있는 사람이며 이런 자질이 갖추어질때 참된 민주시민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협소한 이기주의 관념에 젖어든 역사적 사회적 배경은 인정된다. 우리는 옛날부터 유림사상의 영향으로 조상숭배사상, 가정제일주의사상에 살아왔다. 따라서 나와 나의 가정을 넘어선 대아(大我)를 본다든지 세계를 상대로 하는 안목을 키워오지 못했다.
그러한 우리에게 공동체를 위한 공헌이나 이웃을 위한 희생들은 별세계의 일. 특수한 인물들의 일이지 우리 모두가 해야할 것으로 여기지못했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겪어온 과거를 살펴보건대 대국의 속국으로서, 식민지 국민으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거기서 전체 공동체를 위한다는 것은 곧 우리 민족을 반역하는 일이었고 실제 대아(大我)를 위하여 무엇을 희생했다면 그 결과 되차지 되는것은 개인의 손해뿐이었기에 내 살 걱정이나 하는것이 가장 현명한 길임을 체득해왔다. 이것이 일반통념이 되었다. 과연 이런 여건에서는 남은 다 적이요 사회는 믿지못할것, 즉 나를 속이는 대상이니 무엇을 약속한다해도 불신하며 기피해야한다는 생각이 만연될 수밖에없는 것이다.
협력이란것도 지금 당장에는 나에게 손해일지라도 근시안적인 나의 이익을 희생하고 전체에 기여할때 전체가 살고 살아난 전체에게서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크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번번히 무너지고 손해만 안겨준 역사속에서는 지금 당장 나에게 이익이 없으면 협력은 고사하고 기피하게 되는것이다. 이와같은 역사가 유구히 흐르는동안 다른 사람도 나와같이 대접해야한다는 사상이 우리마음에 자리하지 못하게 된것이 아닌가 분석해본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질문을 제기할 필요를 느낀다. 남을 위하는 마음, 남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해야한다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왜 나만을 위해서 살면 안된단말인가? 수많은 사상체계에서도 수많은 철학이론에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있는 해답을 적어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이 창조되었다는 창세기의 말씀과 남을 내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에서만 그 타당성과 정당성을 얻게 된다.
노예해방운동, 여성운동, 인권선언등이 그리스도교의 바탕이 없이 발생할 수가 없었다면. 그리고 서구의 민주사상이 장구한 그리스도교 역사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우리가 부르짖는 민주화운동도 그 기반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명실공한 그리스도교화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입각한 인간학적 기반없이 참된 민주화는 어려울것 같다.
이경우(신부·가브리엘)
53년 사제서품
광주가톨릭대학장 역임
현 부산교구 부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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