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갑자기 시련이 닥쳤습니다. 임신이 된지도 모른 상태에서 영양실조로 그만 자연 유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밤중부터 갑자기 하혈을 시작한 저는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새벽에 병원으로 옮겨져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저를 보고 의사선생님은 몇 번이고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기적이라며 조금만 늦었어도 가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때 당시 죽게 되었다면 사랑하는 딸과 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한 남편은 어떻게 되었으며 내 영혼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잠시라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옴을 느끼며 저를 거두어 가시지 않고 다시 살려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때 당시는 혼인을 하고 다시 성당에 나가겠다는 어리숙한 마음에 잠시 주님 곁을 떠나 있었는데 인내하시는 주님은 변함없이 침묵중에 저를 바라보며 지켜주고 계십니다.
애아빠는 영장이 나와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저는 딸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애아빠는 열차에 몸을 담고 논산 훈련소로 떠나면서 아내ㆍ자식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괴로웠던지 창틀에 있는 커튼을 내리고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저는 열차가 떠날 때 딸을 가슴에 안고 쫓아갔지만 서서히 멀어져가는 기차를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됩니다.
더욱이 가장 견디기 힘든 슬픔과 고통은 사랑하는 우리 딸과의 이별이었습니다. 젖먹이를 떼어놓고 먹고 살기위해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던 어미의 심정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가방을 들고 울면서 앞서가던 큰 도련님, 아이를 업고 뒤따라오시면서 하늘이 무너져라 비통해 우시던 시어머님. 그날 이별의 고개길은 온통 모정의 뜨거운 눈물과, 비통의 눈물로 적시어졌고 하늘을 우러러 애써 숙명적인 것으로 돌리려는 작고 여린 어미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 했습니다.
농촌에 있던 시댁의 가계도 넉넉지 못한데다가 시아버님마저 병환 중이셨기 때문에 제가 시댁을 떠나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처지였습니다. 저는 이 같은 아픔 속에 사랑하는 딸을 남겨 두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후 애아빠는 제대를 하고 곧장 서울에 있는 직장에 나갔으며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있는 딸을 데려다가 다시 행복한 가정을 꾸몄습니다. 하지만 장남인데다가 어려운 생활이 계속되자 전 요구르트배달을 했습니다. 서투른 솜씨에 빙판에서 수레와 함께 미끄러질 때면 수백 개의 요구르트는 와르르 무너져 길바닥에 흩어졌고 출근길을 가던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집어서 가방 속에 넣어 주고 했습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있던 병든 내 영혼은 점점 주님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당 앞을 지날 때면 성당 문 쪽으로 다가가서 마치 누군가가 나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제 마음을 이해하고 들어줄 상대가 있다면 내 모든 것을 속 시원하게 얘기하고 성당에 나가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용기를 내어 신부님을 찾아가 모든 것을 말씀드리고 떼를 써서라도 혼인성사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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