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야훼가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가는 곳곳에서 뭇 민족에게 멸시를 받게 한 내 이름 때문에 행동할 것이다…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주리라.
나의 기운을 너희속에 넣어주리니…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면서 나의 백성이 될것이요、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에제키엘36、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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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성야 제7독서의 말씀이다 오늘 우리들이 유일회적 역사사건인 예수부활을 역사학적으로 증명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설명해 줄 수 있으며、사랑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신앙고백을 간직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 부활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느님의 사랑이 온 땅을 새롭게 창조하신다. 일어나 서로 사랑하자』.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시고 사랑의 힘이 무엇인지를 죽음으로써 알려주셨다. 그리고 감히 죽음도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음을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부활케 하시어 우리에게「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는 우리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게 하셨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당신 아들딸이며 결코『너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 (이사야50、4~7)는 자녀됨의 권리를 주셨다. 그 권리와 함께 우리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이웃에게 사랑으로 증명하고、우리들의 신앙으로 설명해 주어야할 의무를 갖고 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예수의 사랑을 따르려는 만남의 길목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한다. 『우리의 믿음이 정말 믿을만하다고 나는 어떤 사실에 입각하여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이 질문을 오늘 부활을 맞으면서 더욱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의 일치를 희망하는 우리들의 이 믿음을 하루의 생활도 힘겨워하고 있는 이웃 형제들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신빙성 있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들의 신앙고백을 실제로 절망과 불행상태에 있고、비인간적 조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요청에 의한 신앙고백 제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하는 물음에 응답하기 위한 자세가 요청되고 있다.
2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만나는 이에게 주신 첫 번째 인사는『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평화의 인사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희망과 불안함을 동시에 갖고있는 이웃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는 것도 평화이다. 또한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고백하는 우리에게 요청하는 궁극적인 사랑의 증거상태도 평화이다. 평화는 자유를 가져다주고 살아있음에 대한 생명력이 충만한 상태이다.
이제 우리는「평화의 인사」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평화를 나누어야하고、하느님의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황 요한23세는 그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인 우리들의 노력을 세 가지로 표현한바 있다. 즉、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요청되는 세 가지의 기둥이 있으니、첫째는 사랑의 기둥이요、둘째는 진리의 기둥이요ㆍ셋째는 정의의 기둥이라고 했다. 세 가지 기둥이 똑바로 바르게 세워질 때 평화의집이 지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때 주의 평화가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주의평화가 이 땅에 함께 하시기를 희망하며、부단히 자기를 깨뜨리면서 평화를 위한 기둥이 되겠다고 일어선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랑의 기둥이이 되고、어떤 이는 진리의 기둥이 되고、어떤 이는 정의의 기둥이 되려한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상대를 올바로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의 신앙이라는 땅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작고 약하지만、하나의 그리스도 신앙에 기초하며 주의 평화를 바라는 우리의 미래는 무한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들을 거절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에게 당신의 새기운을 넣어 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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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활을 맞은 우리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이웃들로 부터 요청받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답을 주어야한다. 그 답은 바로 신앙인의 궁극적 의의를 드러내는 신앙고백의 실천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첫째、우리들의 공동체(교회공동체)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가、공동체의 전례와 모임과 실천 속에 과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의 질문이 가능하다. 이 질문은 계속적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모아들이도록 할 것이다.
둘째、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평화의 인사와 같이 우리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웃과의 만남 속에 어떻게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으며、자신의 삶으로 세 가지의 어느 기둥을 세우려 하는가이다. 그것은 먼저 한사람 한사람이 어떤 조건과 상황속에서도 할 수 있는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셋째、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위의 두 가지를 찾아 일으키는 일이야말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모시는 일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신앙고백을 보여 달라고 하는 이웃들의 요청에 응답하는 생활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이 모든 우리들의 노력가운데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하느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당신 뜻대로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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