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우리 사회에서는 도덕이 죽어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퇴폐ㆍ음란ㆍ외설 등 본능적 향락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약중독을 거쳐 인신매매ㆍ강도ㆍ가정파괴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고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왜 그런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도시 생활
여러가지 이유중에는 이사회가 본격적으로 도시화되면서 도시로 진출한 이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마치「근절」되듯이 도시로 옮겨졌으며、도시인들은 일반적으로 혈연관계나 지연관계、권위나 전통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일종의「익명의 세계」에 사는 것 같이 흔히 느껴진다. 물론 개인의 책임감ㆍ주관ㆍ신념 등이 뚜렷할 때는 많이 다르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들도 장기적으로는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개인의 어떤 주관 없이 행동양식을 일방적으로 외부에서 부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모여 살 때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각자 자기의 관계들을「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준은 자연히 자기 이해관계가 될 것이며 일반적으로는「직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할 때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을 대할 때에도 중요시하는 것은「어떠한 사람이냐」(인격)가 아니라 나를 위해「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냐」(능력)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웃관계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사람이 이러한 생활에서 지치고 시달리면、아무리 유익한 것이라도 반성을 필요로 하는 정신적인 것、교육적인 것、도덕적인것 등은 찾게 되지 않고、그저 쉽게「소비」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주로 인간의 욕구를 채우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의 위력을 도외시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인간이 우선「기술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다.
한 가지 일을 기술적으로「어떻게」하는지를 아는 것만으로 어떻게「살아야 하는지」를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확답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활 수준
같은 사회 안에서 살면서 소득의 분배에 있어서는 아직도 불의한 것을 지적 안할 수 없지만、과거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개인의생활수준은 다소 향상되었다고 볼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동적으로 더「인격적 인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생활수준이 조금이나마 향상 된다는 것은 역시 조금이나마「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다. 생계유지가 심각하게 문제시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도 변화가 있는 것이다. 그러데 여기에서 인간자신의 변화 또는 인간의식의 변화가 없다면、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소비할 수 없었던 것을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을 때 소비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은 소비가 단순히 양적으로 증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질적으로는 타락하는 소비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같은 사회에서 불공평한 재화의 편재 현상을 의식하게되며 이 스캔달 즉 이 불의에 문자 그대로「걸려 넘어져」건전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직접 간접으로『네가 불의하게 돈을 모았어도 사회가 너를 인정하니 나도 불의하게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비리의 사건들이 사람들을 그렇게 자극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도둑이나 강도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도둑이나 강도가 생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뿐 아니라 다른 이의 사치생황에 대한 호기심과 동시에 자기도 그렇게 해보려는 허영심이 범행을 낳기도 한다.
정치 영향
이 사회에서 인간이 어느 정도 인격적 대우를 받느냐의 정도로、국민이나 시민의 정신적 생활 기준에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인간의 존엄성을 도외시하다 보면 인간의 학살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목적을 달성하려는 지배자에게는 괜찮게 보일 수 있으며 국민의 비판을 3S정책(섹스、스크린、스포츠)으로 해소 시키는 것도 괜찮게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5공 비리가 보여준 것만 해도 권력과 재벌의 결탁은 권력도 재벌도「국민위한」것이 아니었고 어떤 특정인이나 특수계층을 위한 것이었음을 충분히 알아듣게 해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국민 하나 하나는 권력이나 재벌에 아부하여 부귀영화를 꿈꾸지 말아야 한다고 해야 하겠는가? 너그러운 마음에서 정직하게 계획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국민에게는「걸림돌」이 아닐 수 없는것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사회정화 운동」은 누구 누구를 위하여 했어야 되는지 모르겠다.
흔히들 말하기를 권력에는 돈이 따르고、돈에는 사치가 따른다고 한다. 여기에서 사치란 도덕적으로 인간을 허영에 빠뜨려 타락케 하는 향락부터 시작해서 배금에 이르기까지의「비인간화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하나의 풍토로 변하면 이 사회에서는 정의가 밀려나고 비리가 합법화 될 것이다.
언제 우리가 교육과정에서「왜」저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안되고、이렇게 해야한다고 설명을 들은 일이 있는가? 이것은 무조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왜」그래야 하는지에 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과는 달리「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비교적 많이 들었다. 왜 내가 저것대신 이것을 진심으로 해야 하느냐、또는 왜 내가 안해도 되는 것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은 어떤 논리도 아니고、어떤 과학도 아니고、어떤 법조문도 아니며、일종의 신념이나 신앙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어디에서「왜?」에 대한 답을 얻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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