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교육일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기 종족의 유지를 위한 수단을 자기 어미들로부터 배운다. 까치는 까치집을 짓는 법을, 사자는 토끼 사냥의 법을,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으는 법을 배워서 자기 종족을 지상에 유지하고 있다. 인간도 인간의 교육을 통해 더욱 인간으로서 존재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위대한 교육자들은 한결같이「인간 완성」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인간 완성」과연 이것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가르치고 배우고 하면서 인간 역사는 발전하고 있지만 교육은 아직도 끝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배운 사람이 가장 위대하다고 하였고 미켈란젤로는 만년에 이르러서도『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고 했다.
사실 사람은 살아있는 한 사는 법을 배워야 인간으로서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교육도 그 근본에서 잘못 이뤄지고 있을 때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철학자 선생님들 위인들이 인간을 위한 훌륭한 말씀을 많이 하고 있지만『인간이 어떠해야 한다』는 그 말들의 근원이 어떠냐에 따라서 받아들일 것도 있고 버릴 말들도 있다. 즉『인간이 무엇이냐』하는 근본적 대답을 하지 않고 아무리 인간 완성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그러한 교육은 결국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 두지 않고 어떤 인간이 되라고 한다든지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 우스운 일이다.
부모를 포함해서 교육하는 입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먼저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에서 교육을 해야 될 것 같다. 단순하게 최상적인「올바름」이니「선」이니 하여 그것을 따르라고 한다면 젊은이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참으로 인간이 무엇이다』라는 확신을 갖지 않는다든지 가지고 있더라도 희미하고 더구나 잘못된 것일 때 인간은 인간 완성을 위해 끊임없는 시행착오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근간에 교육의 책임 위치에 계시던 분이 자기 책임을 못다한 것을 문제 삼아 자살했다. 그분의 교육정신과「올바름」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을 하였다는 것이 어쩐지 뒷맛이 좋지 않다.
교육자가 자살을 하였다. 교육은 인간을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면 먼저 인간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 선결문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교육자는 인간으로 있으면서 인간을 인간의 길로 이끌어야 하고 인류 종족을 더 높은 차원으로 올리면서 인간을 지상에 존속케 하는 것이 아닐까?
교육자 자신이 자살하는 것은 뭣인가 잘못된 점이 있는 것 같다.
현재 사도 확립(師道確立)을 위한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바라는 것은 인간을 가르치는 분이 인간을 가르치기전에 인간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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