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신문에서는 지난 한해 1986년을 정리하는 특집들을 싣고 있다. 이러한 한해의 마무리 기사 내용들이 저무는 어느 날의 찬란한 황혼처럼 낭만적이었으면 좋겠다. 다만 『아 또 한해가 가고, 나는 나이를 한살 더먹게되고, 늙어가는 삶의 의미여! 홀로 한잔의 술을 들자…』이렇게 다만 안온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흘러가 버린 먼 목가풍 시대의 꿈일까?
신문에서 가장 돋보이는 1986년 마무리 기사 제목은「무더기 구속」이고 거기에 붙은 부제는<지난5년동안의 누계보다 2배가 넘는 2천4백명을 구속>이라고 되어있다. 기사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건국대학교에서 단일사건으로1천2백87명을 구속한 것은 대한민국 사법사상 처음 있는일이라고 되어 있다. 세상이 되어가다 보면 처음있는 일도 있어야겠지만 그것이 좋은 의미로 발전하는 어떤 새로운 것이어야지<지난 5년동안의 구속자보다 올1년의 구속자수가 2배나 되게 더 많았다>는 악화와 후퇴의 면으로 처음있는 일이어서는 곤란하지 않는가.
옛날 공자의 말씀에서 보면<형벌로써 정치를 하면 백성이 자신들의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만 법망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예의로써 정치를 해야 백성이 자신들의 잘못을 비로소 부끄러워하게된다>고 한것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는 물리적인 힘과 형벌을 얼마나 더 과감하게 보여줄까 하는 방향으로 일관된 길을 걸어가는것같다.
그것이 현정권의 태동기에 관련되어 있는 광주사태였고, 지난 10월의 건국대 무더기 구속 사태였다고, 또 바로 최근에 6만명의 경찰을 배치해 야당의 서울 대회를 막은 사태였다. 세상이 이렇게 되어가기로 하면 실로 저질러지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무장까지 했던 광주 시민의 항쟁은 망월동 묘지에 잠들어 있고, 끊임없이 학생들이 내던지는 돌멩이와 화염병은 경찰의 최루탄 앞에서 흩어진다. 여당의원들이 새해 1년의 극정 예산을 문을 걷어 잠그고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를 시켰어도 항의하며 달려드는 야당의원이 오히려 멱살을 잡혔다고 한다. 국회의 문짝을 때려부수던 의자며 재떨이 받침대 따위는 이제 애들 장난감같이 웃기는,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 세상이다.
과연 브라질의 헬더 까마라대주교가 까마득하게 자나간 날 저 인도에서 마하트마 간디가 채택했던 이른바「비폭력저함」을 배우려 한 심사를 오늘 우리가 실감하게 되는 것같다. 우리 교회가 늘「인간의 존엄성」과「인권의 수호」를 외쳐대지만 이것도 저70년대 당시의 주교와 신부들이 감옥에 들어가고 밖에서는 오원춘사건, 시국기도회 같은 집회들이 명동성당 언덕을 군중으로 뒤덮이게 하던 때에 비해 보라. 그것이 없이는 못산다는 그 십자가,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금 우리는 어느 옷갈피에 감추고 있는지, 십자가는 반드시 관념적인 차원의 것인지, 창에 찔리고 피가 흐르는 현장의 것인지도 분간되지 않고있다.
그래도 물론 세상 일의 어려운 고비가 절정에 달할 때마다 정계의 여야 지도급 인사들이라든가 국내외의 뜻있는 인사들이 의례 김추기경을 방문해 자문과 협조를 구한다거나, 그분의 한 마디 말『비우라』가 현실적인 위력으로 파장을 이루어 나가는 현상은 있다. 그러나 비우라는 이 일깨움도 세상 싸움의 형국이 하도 급박하니까 서로 한발짝씩 물러서라는 뜻에서 우선 절감되는 의미를 지녔던 것이 아닐까.
옛날 중국의 노자는 비우라는 말을 했지만<비우라. 그래야 거기에 무엇을 담을수 있지 안겠는가>라는 의미의 맥락에서 그말을 썼다. 오늘에 있어서도 결국 거기에 무엇을 다시 담아야 하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방도가 요청되지 않을수 없다.
또 여도 야도 집권욕을 버려야 한다는 일깨움의 의미에 있어서도 일차적인 수긍에 이어 그 다음의 문제가 생각되지 않을수 없다.
결국 그 다 음엔 어떻게 되어야겠다는가. 그다음의 문제는 어쩔수 없이<정의로운 길이 어느 방향이냐?>를 따져 정의의 편에 설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교회는 언제나 평화를 원하고 폭력의 악순환을 경계한다. 그러나「평화」는 어떤 신비스러운 초월적 차원의것만은 아니다.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 사목헌장이 가르치는바에 의하면『평화는 잠정적인 휴전의 상태도 아니고 강요된 침묵의 상태도 아니고, 그것은 바로 정의가 실현된 상태인것』이다. 「정치라는것도 그렇다. 그것이 나쁜것도 아니고, 집권욕이 나쁜것도 아니다. 다만 누가 정의의 편에서 봉사적인 집권자이고 누가 불의의 편에서 폭군적인 압제자냐, 또는 앞으로 그럼 가능성이 있느냐가 문제될뿐이다. 그러니까 교회는 전통적인 예언직에 충실해서 옳고 그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견해로서의「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엊그제 저 필리핀의「마닐라」에 공산주의 반란군인 신인민군과 정부군 사이의 휴전이 발효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민주화 성취라든가, 독재의 부산물이었던 극렬분자들에 대한 여유있는 수용태세면에서 한국은 필리핀보다도 훨씬 후진된 나라라는 느낌이 이 세모에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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