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과 새해가 다가오면 신년인사가 곁들인 성탄카드나 연하장이 바쁘게 오간다. 오랫동안 적조해있던 친지들에게 이러한 뜻깊은 시기에 밀렸던 안부의 인사를 나누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런데 이 뜻있는 풍속이, 잘못된 세속에 오염되고 있어 안타까웁기 그지없다.
어느날, 나는 세 통의 카드를 받았다. 봉투를 열자, 하나에서는 스탬프 잉크로 찍힌 고무도장의 이름만이 눈에 띄었고, 다른 하나에서는 카드안쪽에 서명조차없는 하얀여백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마지막 카드에는 예쁘게 쓰인글씨의 인사가 적혀있었다. 『바오로 회장님, 어려운 살림속에서도 꿋꿋이 사목회를 운영해나가시는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영광안에 거룩한 성탄 맞아하시고, 새해에는 많은 형제분들과 마음을 모아 주님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기로 노력해요. 글라라 드림』
첫번째 카드를 대하는 느낌은 세상이 참으로 바빠졌구나하는것이었다. 명단을 쭉 뽑아놓고 봉투와 속알맹이에 스탬프만 찍어대면 되는 양산(量産)형이다. 그리고 두번째것은 부조(扶助, 實利?)형처럼 느껴졌다. 백지카드이니 당신이 한번더 써먹으시오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싶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는 달랐다.무언가 마음속 깊이 와 닿는 훈훈한 인정에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카드였다
카드건 선물이건, 중요하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정성이 가득한 마음이다. 삼단같이 고운 머리칼을 잘라서 남편에게 시곗줄을 선물하는 아내 마음씨, 그리고 귀중하기 그지없는 시계를 팔아서 아내에게 머리빗을 선물하는 남편의 속깊음은 언제 들어도 곱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것을 다 주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물량(物量)공세가 판을 친다. 겉으로 나타나는 번쩍거림만이 눈을 어지럽힌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모습인가. 아니면 진정한 이 시대의 징표인가?
내일 모레가 성탄절이다. 자신을 송두리째 우리에게 주러 오신 그분에게 나는 무엇을 드려야 하는가? 내가 가진것이, 내가 드릴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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