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방영된 텔리비전 드라마「억새풀」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그 처세술이 하도 능란하여 자타가 공인하는「현실주의자」로 행세했다. 그는 일제시대부터 유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세월, 큰 정치적 변혁이 있을때마다 몰락의 위기를 용케넘기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아 영화를 누린다. 이사람이 화면에 나타나면 씁쓰레한 웃음을 지은 시청자들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실주의자는 어디에나
옆에 앉은 자식들에게 사람은 저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단호히 타이를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각박한 이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저래야 한다고 부추길 수도 없다. 그런 처세의 파렴치성에 대한 양심의 거부감과 함께, 또 한편으로는 자기도 좀더 요령있게 살아왔다면 지금의 치지보다는 훨씬 나은 위치에 올라서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와 약간의 선망이 엇갈리는 느낌은 씁쓰레할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그런 현실주의자는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자기 실리를 위해 어떤 정치권력과도 서슴없이 타협하고 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부도덕성을 버젓이 합리화 한다. 한걸음 더나아가서 법률만능사상가들의 흑백논리를 앞세워 사회적 부조리의 책임을 힘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라들에게 뒤집어씌울수도 있다. 모든 일을 법으로 재단하는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의 부추김을 받을때 악법도법이라고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전가의 보도 휘두르듯 활용한다. 법은 사람의 의복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몸과 마음에 꼭맞게 만들어져야 한다.
성실한 사람이 대우를 받고, 사회윤리가 정립되고 노력에 대한 댓가가 정의롭게 분배되고 신뢰를 바탕으로한 화합의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법의 기능이다. 이 기능을 다하지 못할때 법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불평등 의식과 좌절감을 안겨주고 권력과 돈의 시녀로 전락하기 쉽다.
◆법이 제기능 다 못할 때
예수시대에도 자기들의 물질적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현실주의자들과, 또한 자기들의 권위와 지위를 고수하기 위해 모든 일을 법으로 재단한 법률 지상주의자들이 있었다. 구약 말기에 일찍부터 헬레니즘에 도화되고, 마카베오 전쟁 후 하스모네아왕조가 들어서자 재빨리 동조했던 귀족과 고위제관들의 실리주의 전통을 답습한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기원전 63년 팔레스티나가 로마의 속주로 병탄되자 물론 지체없이 새로운 통치자에게 적극 협력했다. 그들은 예수의 전도활동이 자기네 제의(祭儀)체제의 현상유지를 위협한다고 그분을 제거하기 위해 바리사이파와 제휴했다. 안티오쿠스 4세의 유대교 박해 때 항생의 주축을 이루었던 하시딤(경건한 사람들)의 신앙전통을 계승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법률 지상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자구대로 해석하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율법을 지키려고 애썼다. 당연히 율법교사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유대교 지도자로 자처한 그들은 자기네 생활둘레에 번설스러운 규칙의 울타리를 치고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율법에 따라 가차없이 단죄하였다. 그들은 밑바닥 인생들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런 고생자체를 하느님께 저주받은 악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도 자기들의 경건함과 충실함을 자랑하였다(루까18, 10~12)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
예수의 전도활동은 신관(神觀)의 투쟁이었다. 물론 그분은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품고있던 속된 하느님의 개념도 거부하였다(유혹사화 참조). 그러나 그분이 가장 신랄히 규탄한 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의 신관이었다. 그들은 하느님에 관한 모든 것이 율법 안에 계시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머릿속은 율법과 그리고 이 율법을 지키면 축복을 내리고 어기면 저주를 내린다는 관념적 하느님 상으로 꽉 차있었다. 스스로 꾸민 고정관념을 절대화한 그들의 마음속은 독선과 교만으로 가득하여 자애로운「우리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이 들어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마음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라는「새 포도주」를 받아들일 수 없는「헌 부대」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고 설파하였다.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모르거나 지키지 않는다고 천시하고 단죄하던 족속들, 사회에서 소외되었을 뿐아니라 종교에서도 버림받은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에게서「새 부대」를 발견하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사람 대접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행적을 보면서 자애로운 하느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스스럼없이「새부대」(회개)를 마련하고「새 포도주」(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만든 법보다 하느님의 법을 지키셨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이다. 사랑외에는 이세상을 구원할 길이 없다는 것을 그분을 죽음으로 증거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은 오늘도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실리추구와 고정관념의 헌부대를 버리고「새부대를」마련하여 사랑의「새포도주」를 담으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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