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세계의 여론을 풍미하던 솔제니친 사건을 든다는 건 새삼스럽지만 어느 겨울날 조국으로부터 추방 당하는 솔제니친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일말의 오한을 느끼게 한다. 언제든 자신이 뿌리 박고 있는 조국에서 추방 당할지도 모르는 위협 속에서 연만해 뵈는 그와는 걸맞지 않게 어린 자녀들을 끌어안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정신적인 거인이라기보다 하나의 범속한 이 지상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어떤 연유로도 박해 받는 인간 가족들을 연상케 한다면 하나의 감상적인 느낌일지 모르겠다. ▲20세기 행동 작가 쎙떽쥐베리가 단독 비행을 하다가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사막의 고원에 불시착을 했을 때다. 태초의 정적에 잠긴 무인절경, 유성의 파편인 운모가 떨어져 있는 이 절망적인 자연의 무의식과 공허 속에서 그는 기적이란 이 신비한 자연이 아니라 그 속에 홀로 깨어 있는 작가 자신의 의식이란 것을 깨닫는다. ▲솔니친의 시베리아, 나치의 아이슈비치, 월남전쟁, 비아프라의 기근, 해군 신병들의 숱한 청춘의 침몰 등, 인간 스스로 저지른 인위적 상황이든 자연이 강제하는 무의식적 불가항력적 상황이든 인간은 유사 이래로 부단히 여기에 대결 저항해 왔다. 솔제니친은 긴 세월의 시베리아 유형기를「이반ㆍ데니소비치의 하루」로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인간은 그 무진장한 상황을 다 겪어내고 다 살아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위대한 의식은 그 절대한 허무 속에서 어느 순간 그 무엇인가를 건져내고 그것을 포괄할 수 있는 어떤 의미를 깨닫는 게 아닐까. ▲인간 고뇌의 긴 역사에 비긴다면 개개인의 생명이란 참으로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솔제니친과 같은 팽팽히 살아 있는 의식이 있는 한「솔제니친의 하루」는 바로 영원한 하루에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사순절, 이 수난의 절기에 바야흐로 그리스도는 갯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며 그 고뇌가 절정에 이르고 있을 때다. 그런데 그의 우둔한 제자들처럼 우리 또한 산 밑에서 지금 쿨쿨 잠이나 자지 않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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