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그분(예수)을 죽음으로부터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다 그 목격자입니다』(사도행전 3장 15절) 이것은 베드로의 첫 설교 중의 한마디이다. 크리스찬 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이 다시 살아나셔서 당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활동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현대의 교회도 부활의 증인을 즉 다시 말해서 죽음을 극복하고 초월한 사람들의 교회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찬 신자들은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를 본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신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본 적이 없다고 하거나 그분을 만났으면 할 것이다.
실은 부활하신 예수를 그가 승천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만이 만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와 맞지 않는 말이 된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있는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 후에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으며 또 한 번에 5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코린토 전서 15장 3절~8절) 이것은 바오로 사도의 개인적인 증언이다. 이것은 어떤 환상이나 환시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오는 확신에서 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아쉬운 것이 바로 이러한 신앙이다. 과연 우리의 신앙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는지? 따라서 죽음을 극복하고 초월했기 때문에 모험도 마다하지 않고 용감하게 생활하며 우리를 결박하고 있는 죽음의 사슬에서 벗어난 完美한 자유인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지? 우리는 계속 우리 자신에게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 종말에 그분과 함께 부활할 수 있다는 그러한 보증만이 아니라 오늘 바로 이 순간에 우리는 부활한 사람으로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 신앙은 아무 소용이 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우리 신자들은 너무나도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교회법이 요구하는 최저선을 준수하면서 이 다음에 죽은 후에 하느님이 좋은 곳에 보내 주길 바라는 그러한 신자 생활이다. 좀 더 모험적이고 적극적인 신자 생활이 요망되며 더구나 오늘 같이 부정이 만연된 이 사회에서 사는 우리로서는 좀 더 일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과감한 생활양식이 요망되고 있는 것이다. 살신론의 제창자였던 나이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크리스찬들이여 부활한 자의 얼굴을 가져 다오!』라고.
둘째로 부활한 자의 신앙은 욕심과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생활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가치도 다 죽음으로써 멸망되게 마련이나 부활은 그 모든 가치를 초월하는 가치를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된 생명을 받아 누리기에 금전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탐할 겨를이 없이 멋으로 가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부활한 자의 신앙은 또 겁이 없다. 진리와 정의, 사랑과 평화 이웃과 세계를 위해서 자신을 헌신해도 아쉬움이 없다. 그에게는 빼앗길 수 없는 없어질 수 없는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 특히 우리 한국 교회는 깊이 반성해야 할 줄 생각한다.
넷째로 부활은 침울하고 고민에 억눌린 생활에서 벗어나게 한다. 부활은 참된 기쁨을 준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를 다시 만난 제자들이 얼마나 기뻤겠는가는 우리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기쁨을 맞는 자는 불가능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크리스찬은 이 지상의 사물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살면서 이 지상에 몸을 담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아무도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완전하게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갖도록 적어도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와 함께 활동하시고 생활하신다는 것을 믿고 찾는 자는 그의 발현을 보고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날을 한낱 축일로서만 지낼 것이 아니라 부활을 생활하는 시발점이 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며 우리 교회가 부활한 사람들의 모임임을 명실공히 이 사회에 나타내 주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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