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빛과 어둠을 가르셨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상대로 사람을 만드시니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심히 좋다고 생각하셨다. 이리하여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창세기 1장)
우리가 대좌하여 하느님이 보신 흡족스런 창세의 눈에 대하여 화제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 하느님의 눈은 동그란 원이 아닌 즉 가시(可視)의 세계가 아닌 직관의 충만한 우주였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굳이 신의 그림자를 찾는다면 눈동자 속에 투영되었고 반짝이는「진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고독한 영혼의 창가에서 세상을 조망하면서 자기에게 독백하는 눈 그 많고 많은 무수한 눈들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생 낙서 같은 루오의 작품 속의 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낮과 밤 없이 나는 홀로 이야기를 한다」
(solilogues) 루오의 풍경은 나무가 있고 길이 있고 달이 있습니다. 특히 달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눈 앞에 전개된 것들의 묘사가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끝없이 뻗아가는 들이며 길이었고 유현(幽玄)한 문을 여는 길이었습니다. 길과 교차되는 그 눈은 무엇을 봅니까? 사실 눈은 열렸고 세상을 보는 그 눈으로 자기를 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처음 보듯 어째서 개는 개의 눈을 소는 소의 눈을 보아야 하며 토끼는 다람쥐의 눈을 뱀은 개구리의 눈을 고양이는 쥐의 눈을 먼저 봅니까? 비록 땅 위를 기든 하늘을 날으든 그들이 사람을 볼 때도 한결같이 사람의 눈을 봅니까. 이것은 절대 언어의 통화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경계하고 대화를 합니다. 독일 신비주의의 환상적 작가인 맑스·에르스트의「인간의 눈」과 명상적인 작가인 스위스의 폴클레의「눈」도 보았습니다. 인간의 무한욕망이 영생일진댄 영원의 개안(開眼)은「예술은 신을 볼 때까지」라고 말한 그대로 우리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지난해 작고한 세계의 휄리스트인 파블로·카잘스는 바흐의 곡을 타면서『나는 거기서 신의 음성을 듣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와의 별리(別離)의 선물로 유화「눈동자」앞에 앉아서 작은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짧은 대화에서 비로소 신앙의 싹이 트기 시작한 눈과 그 눈에 눈물까지 고이면서 저는 당신의 고백을 들었읍니다. (언젠가 하신 말씀에 나는 신앙과는 먼 사람이오 하시더니) 당신은 그 불신을 꺾어 들고 우리의 제단 앞에 겸허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며 또 저녁이 되니 새로운 우주가 펼쳐지려 합니다. 몸부림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타고 걸으시면서 먼 길로 여기 산촌 기슭에 묻힌 상리동에 저를 찾아 주셨습니다. 그때『신부님께 나 영세하겠수다』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졌지만 언젠가 당신께서 불쑥 나타날 때 우리는 철없이 무르익은 열매를 따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폴·클레의 일기문에서 옮긴 묘비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나는 죽은 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사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핵심에는 언제나 가깝고 길은 또한 멀다』
오세요. 산과 맑은 공기와 새소리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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