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창 밑 응달진 곳인데도 노랗게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독일 사람들은 올해는 앞당겨 봄이 왔다고들 제 나름대로 떠들어 대며 4월에 한 번 눈이 올 것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자연은 봄으로 단장을 해서 다시는 그런 눈은 안 올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이때면 언제나 사순절에 제대를 꾸미려고 우리 본당(춘천 죽림동) 양길에 심겨져 있는 개나리 봉오리 가지를 마리아 씨가 꺾어 가던 모습을 생각한다.
제대가 온통 노랗게 단장되고 나면 그 다음 주일은 제대가 보라색 보로 엄숙히 덮여지고 그러면 그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이다. 그렇게 성스러울 수 없는 환희에 찬「알렐루야」의 성가! 그 성가 속에 실려 있는 구원사를 묵상하며 부활미사에 참예하노라면 너무나 큰 그리스도의 신비! 해마다 이때가 되면 난 언제나 내 머리에서 떠오르는 휘석 씨의 이야기 속에 그 少年을 생각한다. 휘석 씨는 10년 전에 내가 이곳에서 공부할 때 우리들에게 교리교수법을 가르쳐 주던 60세가 넘은 교사였다. 그분의 교수법은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은 매번 그분의 신심에 놀라곤했다.
어느날 그분은 자기는 하나의 기적을 체험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평가 시간에 들려 주었다.
「국민학교 2학년까지는 곧잘 따라오던 리차드란 사내애가 그 이상은 할 수가 없어 낙제를 두 번하게 되자 저능아반으로 옮겨야만 했다. 다른 친구애들은 4학년이 됐는데도 그 애는 자기가 낙제한 사실에 대해 전혀 생각도 가지지 않았다. 어린 애들과 덩치에 맞지 않게 목마를 타고 만화를 보고 그 애들 가운데서 행복을 느끼며 휘석 씨 자신도 보통애들과 꼭 같은 관심사로 그 애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어느날 그 애의 부모가 휘석 씨를 찾아와 자기 아들의 첫 영성체 준비에 대해 의논을 한 결과 그 애는 저능아반에서도 잘 배우는 편이 못 돼 휘석 씨는 그 부모님들의 정성스러운 부탁 때문에 개인 지도를 하기로 하고 매일 공부가 끝나 집으로 가는 길에 들러 배우자고 했다.
그 부모님은 올해는 꼭 첫 영세체를 시키고 싶어 걱정스럽게 이야기하는데 그 애는 2학년까지는 신체 발육이나 정신 발육이 정상이고 그 후부터는 신체 발육은 계속되나 정신 발육이 정지하더라는 것이다.
어머니은 그 애를 데리고 재혼을 하게 됐는데 그 현재의 의붓아버지의 신심생활도 보통 아님은 물론 항상 그 애를 친자식 같이 염려해 왔다.
이제 휘석 씨는 구약부터 시작, 이야기를 짧게 들려 주며 만화로 설명된 구원사를 줬다. 그러면 그 애는 늦게까지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찰고 날이 돌아왔다. 그 애한테는 준비가 되는 대로 찰고를 받게 특허가 베풀어졌었다. 이제 리차드는 어머니·아버지 그리 휘석 씨가 있는 가운데 찰고를 받게 됐다. 부모의 마음과 다름없이 휘석씨의 마음도 그 찰고가 끝날 때가지 조바심으로 계속 떨렸었다 한다.
그 애는 마음에 무엇인가 하나 가득 담겨져 있는 것 같다고 말까지 더듬으며 본당 신부님의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을 하기 시작했는데「신부님」…(벽에 고상을 가리키며) 『저 분이 누구시냐?』「답」…『예수 그리스도』「신부님」…『왜 저 분은 저렇게 십자가에 달려 계실까?』「답」…『하느님 세상 좋게좋게. 아담 에와 세상 망가트려·그리스도 다시 와 좋게좋게』「신부님」…『너는 무엇을 원하러 여기에 왔느냐?』…「답」…『내 마음에 그리스도 오셔요』「신부님」…『그리스도가 너한테 무엇이 필요하냐?』「답」…『그리스도한테 가고 싶어요(영생)』「신부님」…『너 그리스도한테 가서 무엇을 하니?』이 말이 떨어지자 그애는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모우고「Anbeten」(흠숭합니다)고 했다.
이에 본당 신부님은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전 구원사를 그 애는 이렇게 다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부님은 너무나 큰 그리스도의 사랑의 기적을 보시는 듯, 어느 철학자가 어느 신학자가 이 이상 더 훌륭한 답을 할 수 있겠느냐고.
이제 리차드는 부활에 첫 영성체를 받았고 부모와 같이 또 다시 성당에 손목 쥐며 가기 전에 병원으로 옮겨져야만 했다. 사백주일에 모시고 온 신부님의 봉성체를 받고 사백주일이 지난 주일에는 리차드는 다시는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소년이 돼 버렸는 것이다.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내 머리 속에서 리차드는『보라! 그리스도의 하시는 업적을』하며 말해 준다.
<독일「뮌헨」19 졸라라가 10번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