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나무들이 차가운 북풍에 떠는 겨울을 어떤 이들은 좋아하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을 무겁고 어둡게 하기도 한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서 겨울은 삶의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한다.
그래도 겨울이면 대지(大地)의 모든 피조물들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는 눈(雪)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아무도 모르게 내린 눈을 아침에 보는 마음은 참으로『아름답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없을 것이다. 올 겨울엔 유난히 눈이 더 많이 내리는 것 같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복 소복 쌓이는 눈송이들을 보노라면 어린 시절 눈내리던 날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면서 눈사람 만든다고 숯을 훔쳐다(?) 눈과 코, 입을 만들고 아버지께서 여름동안 쓰시던 밀집모자를 눈사람에게 씌워주던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뽀드득 뽀드득 눈을 뭉쳐서 이가 시리도록 먹었던 일도 있었다. 시골에서 태여나 자랐기 때문에 눈내리는 날의 아름다운 체험들은 모두 시골 풍경뿐이다. 초가 지붕위에도 산과 나무에도 텅빈 들판에도 장독 위에도 모두 하얗게 덮였던 모습들이 생생하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눈내리는 모습을 서울에서 보고 체험했다.
시골의 자연속에 내리는 눈이나 서울 시내에 내리는 눈이나 똑같은 눈이다. 다만 장소가 다른것 뿐이다.
시골에 내리는 눈은 모두 아름다움을 주는데 서울의 눈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며 미운 대접을 받는다. 수많은 운전기사들을 괴롭혀 미움받고, 새벽부터 눈을 치우는 청소부 아저씨들을 힘들게 하여 미움받고, 길에서 장사하는 노점상들에게도 미움을 받는다. 그리고 걸어다니는 모든 이들에게도 미끄럽게하여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
또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고층건물 옥상에 떨어지는 눈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 무관심을 당한다.
똑같은 눈이지만 자연 속에 내리는 눈은 아름다움을 주고 서울에 내리는 눈은 미움을 받아 추하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어디에 있느냐? 또 어떻게 처신(言行)하느냐에 따라 아름답기도 하고 미움을 받아 추하게 되기도 한다. 특히 사람은 남과 여, 직업 신분에 따라서 각각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와 처신이 다른다.
국민학생들이 놀아야할 자리와 행동(言行)이 따로 있고 대학생들이 있어야할 곳과 처신(言行)이 다르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자기 신분에 맞는 언행이 있고, 그에 따른 생활이 있어야 한다.
눈도 장소에 따라 아름다움을 주기도하고 미움을 받아 추해지기도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란 더욱 각자의 처신과 언행에 따라 곱기도 하고 미워지기도 하리라.
매일같이 하는「고백의 기도」중에서는「생각」까지도 잘못된 것을 뉘우치라고 한다.
모든 이들이 공경하고 생활을 본받으려 하는 성인 성녀들은 모두 생각하고 말하는 만큼 실제 행동으로 살았던 분들이 아닐까. 나도 수도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십수년이 넘었다.
기간이 문제랴.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 생각은 물론이고 말하는 만큼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러한 글을 쓰는것 자체가 바로 부끄러울 뿐이다. 내가 처신해야 할 언행을 신분에 맞지않게 하여 미움을 받은 일이 적지 않았음을 서울에 내려서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눈을 보며 뉘우친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은 자기가 처신해야 할 곳에서 언행이 일치하는 생활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으리라.
산과 들에 내려서 아름다움을 주는 눈처럼 나도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생활이 되도록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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