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좀 오려나. 북쪽 하늘 자락에서 짙은 회색구름을 몰아 바람을 일게 했습니다. 채소밭을 갈고 있는 동리 사람들은 좀 걱정스레 비가 와 주었으면 했습니다. 얼마쯤 됐을까. 하늘이 우르릉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빗방울이 물받침을 때리며 기세가 달랐습니다. 뒷산에 일당 팔백 원의 노임을 받고 잡목을 캔 자리에 새로 소나무 묘목을 심는다고 마을 아낙네들이 올라갔는데 걱정도 됐습니다. 그걸로 교무금을 내야겠다고도 합니다. 오후 3시를 지나자 소나기는 제법 창문을 핥고 뇌성을 동반했습니다. 멀잖은 곳에서 번쩍! 섬광으로 하늘을 찢고 우당탕 천지를 뒤흔들고 벼락을 내려쳤습니다.
누구나 무서운 순간, 이방 저방 자리를 옮긴다고 검을 벗어날 수 없는 원시적인 공포, 천지개벽 때부터의 공포 신앙 이전의 공포, 이것은 인간의 순수 본능으로 영혼 속에 印박혔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 마리아를 외웁니다. 아무도 희생되지 말았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것도 벼락이 주위에 떨어지는 순간만이런 기도가 참말 가증스럽고 측은하고 어리석은 줄 알면서 콩 튀듯 묘한 기도를 올릴 뿐입니다. 불길한 예감 쾅! 우르르 하느님의 분노 같은 소리가 거의 머리 위엔 듯 어느 지점에 떨어졌습니다.
어쩌나, 막막한 대책의 모래알 같은 인간 표적에 비참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올 들어 처음으로 하늘의 불칼 심판에 저 앞 평리 들판에서 삽자루를 메고 가던(자조근로사업 귀가길) 세 여자에게 벼락을 내리쳤습니다. 한 명은 직사하고 둘은 부상했습니다. 끽소리 못하고 비명에 갔습니다.
죽음은 있는 세상, 어떤 죽음을 당턴『나가면 죽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지만 이따위 죽음만은 모를 일이옵니다. 흑사병 암 천형의 병 유전병 그리고 우리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 교통사고 등등 말고올시다. 하느님! 당신이 깊이 오해 받으실 이 벼락에 맞아 죽는 죽음 이 타살의 어처구니 없는 주모자는 누구이십니까! 맞는 자와 때리는 자의 삼관 관계에서 과연 우리는 저 하늘을 원망하는 이를 어떻게 달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죽으면 죽어두 죽지 않는 걸 믿음으로 살지만 그래도 틀림없는 죽음의 표식이 있습니다.
설교자의 포켓 속에 늘 준비되어 있는 인간의 죄의식과 인간의 사악을 들추어 내는 쪽집게는 이런 비극 앞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맙니다. 설교자는 너무도 뻔뻔스레 남의 불행 앞에 의식적(儀式的) 절차만 갖추고 인종과 섭리와 잔인하게도 눈물과 통곡을 거두라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토록 많은 양의 눈물이 고여 있음을 어찌 하오리까? 살기보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 이 세상에 난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Non Existence)욕심부터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잘못입니까? 아담에의 저주는 그의 자손에게 원로의 말씀도 주셨지만 그리스도 세상을 건져셨으나 병과 고통과 죽음은 그대로 남겨 두셨습니다. 죽음은 운명의 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죄입니까?「나면 너는 죽는다」그러나 죽었으면 죽었지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나고 또 납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늘 오해를 받으시는 하느님! 당시느이 사제들은 이때가 가장 죄스럽고 답답하나이다. 대답이 궁할 때 우리는 함께 하늘만 쳐다봅니다. 가끔은 탄식의 보우머램(던진 자에게 돌아오는 무기)을 던지기도 합니다. 하느님! 하느님!
▲고침=914호 일요한담 4단 첫 줄「인종과 심리」에서 심리는 섭리의 誤字이므로 이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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