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병인 새해가 시작됐다. 나이도 한살 더 보탰다. 그리고 겨울방학이다. 학교다니던 시절의 겨울방학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지 않던 때이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되면 으례히 오전과 오후 두차례씩 땔나무를 하기 위하여 지게를 지고 나섰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지만 곧바로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 형들과 친구들이 모이는 따뜻한 양지가 정해져 있었다. 모이면 생활 안팎의 온갖 얘기들이 오고가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꽁꽁 얼어붙은 넓다란 보리밭에서 편을 갈라서 장치기(지게지팡이로 작은나무 토막을 쳐서 넣는 현대 필드하키와 비슷한 놀이)를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겨울의 짧은해는 하늘 높은 곳까지 올라와 나무할 수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게된다. 깜짝 놀라서 부랴부랴 가까운 곳에서 조금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조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집에 들어갈 때는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조인다.
나무를 쬐금 밖에 못해 아버지가 보이면 야단을 맞을 테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아버지가 보시고 야단을 치지않으면 오후에는 놀지 않고 일찍가서 많이 해 와야지. 오전에 못한 것까지 보충해야지』하고 마음으로 결심을하면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이런 상황을 보신 아버지들은 크게 두 가지로 반응이 일어난다.
첫째 반응의 아버지는 문을 활짝 열어재치면서『저놈의 자식 봐라. 왼종일 놀다가 빈지게 지고 들어온다. 낯짝이 부끄러워 어떻게 들어오나. 밥 먹는 것도 아까운 놈이다』불호통이 떨어진다.
꾸지람과 호통을 당한 아들은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지게를 지고 훌쩍 나가버린다. 그리고『에잇, 이미 꾸지람 들을 것은 다 들었으니 오후에도 한판 놀아야지』하며 많이 하겠다던 결심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둘째 반응의 아버지는『요즈음 나무 하기가 힘든다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이 했는냐? 쉬어가면서 하도록 해라』하시면서『배고플테니 어서 밥 먹어라』고 하신다. 칭찬을 들은 아들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조금 밖에 하지 않았는데 이토록 칭찬을 해주시다니…. 그래서 아들은 오후에는 쉬지 않고 열심히 하여 나무를 많이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께서 동네어른들과 사랑방에 모여서 하신 것을 몰래 들은 것이다. 이제 나이를 한살더 먹으면서 젊은 후배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실제로 체험한 일이기에 더 생생하게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여기며 무조건 꾸지람하고 비평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젊은이들이 잘못하는 것도 많다. 잘못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둘째반응의 아버지처럼 대해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느님께서도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잘못을 반복해도 그것을 알고 뉘우치며 반성하는 사람은 언제나 용서해주신다. 내일의 이 나라와 교회를 짊어지고 가야할 젊은이들을 폭넓고 사랑이 넘치는 일꾼으로 자라도록 기성세대 모두가 먼저 마음을 넓혀 사랑으로 대하며 만나야 할 것이다.
용서하는 마음은 훈훈한 사랑의 꽃을 피워 차가운 겨울도 따뜻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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