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벗이 있다. 그는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보다 분명 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준다. 그래서 그는 너무나 고마운 벗이다. 한편 고마움을 늘 확인하면서도 그만큼 나는 그 벗을 생각해주지 못하는 처지이다.
며칠 전 어려운 시골본당의 주임신부로 있는 그 벗인 동창사제가 장시간 통화로 나를 격려해주었다、역시 고마운 벗이었다. 그런데 여러 유익한 대화를 하던 중、그 동창사제가 한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내 가슴에서 떠나질 않는다. 『문택아、나는 너무 복음적이지 못한 사제야!』주일강론 준비를 끝낸 그날 토요일 저녁 강론원고를 들고 성당에 내려갔다.
이 강론원고의 내용을 들고 저 제단에 서야하는 내 자신이 진정 동창사제의 말처럼 『너무 복음적이지 못한 사제가 아닌가 하고』. 삶 그자체로 동화시키지 못하기에 머리와 말 그 자체로 애쓰며 살아가는、그래서 나팔 부는 천사가 아닌가 하고 반성해 본다.
작년의 일이다. 읽기에도 힘든 토룡체(글씨가 엉망인 필체)에 문맥의 연결과 맞춤법이 도저히 이 머리로 해석이 불가능한 동네 주민의 편지 한통이 생각난다. 교우도 아닌 그분이 이웃돕기 성금으로 같은 동네에 사는 교우분을 통해 성금을 보낸 것을 보고 책 한권을 선사했더니 김장철에 더 두툼한 봉투가 나에게 전해졌다.
10만원의 거금을 낸 가난한 그 동네 아주머니는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위해 올해 김장은 가락동 농산물시장에 가서 배추찌꺼기를 모아다가 김장을 하고 그 돈은 어려운 이웃에 전하고 싶으니 사용해 달라고. 그래 동창신부야! 강론원도 들고 있는 이 사제가 단식ㆍ금육의 이행으로 자선함 구멍 밖으로 돈이 터져 나오게 사랑을 퍼붓자고 나팔을 불어 댓지만 먹다 못해 예수의 몸뚱아리까지 양식으로 먹는 우리라고 심각히 분위기를 잡으며 나팔소리의 음량조절을 꾀했지만、내 손엔 쥔 것 없이 남의 손만 쳐다본게 비복음적인게 아니겠는가?
나팔 부는 천사가 되기 전에 맞춤법 틀려 자신의 마음 그래도를 예쁘게 불어댈 수는 없어도 진정 천사인 나팔 없는 천사가 먼저 되어야겠구나. 자선함에 손을 먼저 넣는 사제、그걸 또 네가、그리고 교회 밖의 천사가 가르쳐주었으니、자넨 역시 고마운 벗일세.
<神父ㆍ서울고덕동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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