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나는 여느 때 보다 20분 정도 일찍 집을 나섰다. 나의 유일한 통학수단이었던 지하철이 파업으로 운행이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비지땀을 흘리며 찜통콩나물 버스를 타고 가려고 일찍 나온 것이다.
집을 나와 하늘을 보니 오늘 일진이 좋지 않을 것임을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알려주시는 것 같았다. 걸어서 약 2분 거리인 버스정류장을 단 1분30초 만에 와서 보니 우리반 친구들 58명이 전부 나와 있는 줄 알았다.
2분 정도 기다리니 드디어 찜통콩나물버스가 출현, 약15명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1백여명이 타고 있는 버스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나의 몸은 내 몸이 아니었고, 내 발등은 이리저리 짓밟혔다. 들어갈 자리도 없는데 안으로 들어가라는 못된 기사 아저씨, 문 앞까지 나와 있는 사람들을 떠밀며 타시는 몸 2천 평의 아저씨, 차라리 1시간30분 동안 걸어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약 30분정도 시달리다 정류장에 내렸을 때의 날아갈 듯한 느낌 속에 학교로 걸으며 지난 3월12일에 성당에서 한 십자가의 길이 생각났다.
그날 3시까지 성당에 가야했기 때문에 2시40분에 집을 나서서 55분에 성당에 도착하니 벌써 몇몇 친구들이 와 있었다.
드디어 십자가의 길 시작, 1처부터 5처까지는 아주 거뜬히 해나갔다.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열심히 하다보니 6처부터는 왠지 나도 힘이 들기 시작했다. 가끔 시계를 보면 그때마다 힘이 더 들었다. 10처부터는 서있는 것도 힘이 들었고 배도, 다리도, 머리도 아팠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다보니 어느덧 십자가의 길 14처는 모두 끝이 났다.
기도를 마치고 앉아 쉰 한숨, 『후』. 이 한숨은 아주 힘든 일을 하려던 대로 다한 후 내쉬는 그런 한숨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어깨에 지시고 골고타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돌아가신 후, 하늘에서 이런 한숨을 쉬셨을 것이다. 이때의 한숨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나 무엇을 잘못하고 걱정할 때의 한숨보다는 낫겠지만, 이런 한숨을 다시는 예수님께서 쉬시게 하고 싶지않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