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있었다. 막막한 대양에 억센 파도가 일렁이는 저어갈 길은 있고, 창공을 가린 구름 속에도 날아갈 길은 있고, 깊은 산 속 낙엽에 묻힌 곳에도 더듬어 갈 길은 있다.
어떻든 그 길은 있고 걸어가는 한 길은 멀고 설사 길이 없다손 치더라도 한 번 지나가면 길은 트인다.
「인생은-」하고 지게 목발을 두드리듯 첫 귀절을 외우면 무식한 사람일지라도「나그네」할 줄 아는 흔하디 흔한 말이 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말이 곧 이 말이고 보면 부질없는 감상에 젖어 세상이 어렵고, 싱겁고, 메스껍고, 따분할 때일수록 더러는 좀 심각하게시리 되면 그런 경우엔 누구나 다 시인이고 철학자며 도학자가 되는 거다. 고독하고, 쓸쓸하고, 배신을 당했을 적에「인생은 나그네」하고 보면 더 허망해지지만, 그토록 허탈할 때다.
흥얼거리는 쪼대로 스스로를 달래며 가볍게 한시름 잊는 거다. 무슨 사업이네 농사네, 공부네하고 그 어떤 일에 집념할 적에는「인생은」에서「나그네」는 흔하게 빠져 나가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출세다, 승진이다, 성공이다, 하고 희망을 깃발처럼 걸어 둘 때는「인생의 손님」이 아니라 안방 주인이 되지만 장소, 시절, 나이에 따라 많이도「인생」의 주제가 바뀌어 버림을 알게 된다.
다섯 살박이 계집애는 베개를 업는다.
베개는 아기이다. 어느덧 자라면 낯설은 성바지가 다른 가문으로 출가한다.
그때 그와 그들의 가정을 업게 된다.
하나둘 자식들을 업어댄다. 자녀들이자라서는 그들도 그들의 아비가 하던 짓과 어미가 하던 짓을 모조리 빼지 않고 반복하고, 아비를, 어미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업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을 나누어 업는다. 마침내 그들을 업었던 아비와 어미는 자손에게 인생을 물려 주고 무겁던 짐을 벗어 놓듯 벗어 놓고 떠나가 버린다.
중국 어느 시인의 글에「산 기슭에 아름다운 황금발이여! 남이 지은 곡식을 새로운 이 거둔다네. 그러나 새로 온 이여! 네 추수 기뻐 말라. 또 새로 온 이가 네 뒤에서 기다린다네. 또 네 뒤에서 기다린다」
좁은 길을 걸어간다. 저쪽에서도 누가 걸어온다. 서로 비켜 가지만 그냥 한마디의 말도 없이 지나쳐 버린다. 알 턱도 알은 척도 아니하는 철저한 과객이다.
왜 가끔은 멍청하게 있고 싶을 때가 없는가. 그렇게 멍청하게 걷고 싶어도 세상 사람들은 멍청하게시리 두어 두질 않는다. 결국은 떼밀리고 만다. 이 길에 오늘도 하루의 처자식을 위하여 혹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수는 없을까, 팔자며 운명을 정신적 부적 삼아 집을 나서는 것이다. 늘 무엇을 잃은 걸음걸이다. 그렇찮으면 늘 무엇을 찾고 있는 걸음걸이다. 지난 초겨울 나는 아침 산책길로 한적한 절을 찾았다. 바위를 뛰며 계곡을 건너 숲 속 작은 절에 갔다.
한 노승은 쓸어도 연방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정성으로 쓸고 있었다.
-『아, 스님, 낙엽 때문에 길을 씁니까? 뒤따라 떨어져 쌓이는 낙옆, 누가 온다고 그리 애써 길을 씁니가?』
하니『내야 이 길로 열두 살에 와서 팔십 평생 같은 길을 쓸고 있습니다.
길은 길인 바에야 누가 아니 와도 길은 쓸어야 하지요』한 번도 궐한 적 없이 날마다 날마다 길을 쓸며 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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