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밥숟갈을 놓기가 무섭게 뛰쳐나가 동네 개구장이들과 어울려 뛰놀던 여섯 살백이 훈이가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벌써 몇 달째 이 시간만 되면 신나게 놀다가도 우울한 표정으로 날 찾아오는 훈이다.
같은 동네 단짝이던 철이가 유치원엘 나가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생긴 버릇이다. 파란 제복과 제모에 노란 가방을 메고 엄마 손을 잡고 아침마다 스쿨버스로 유치원으로 가는 철이를 보면 어린 마음이지만 기분이 몹시도 언짢은 모양이다.
처음 철이가 유치원엘 간다고 할 때 며칠 동안 밤잠을 안 자고 울며 저도 같이 가겠다고 들볶아 몹시도 이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쥐꼬리 만한 아빠의 봉급, 그것으론 아무런 생활 설계도 세울 수 없을 것 같아 조그만 구멍가게를 차린 지 벌써 2년째가 된다.
꼭두새벽부터 밤 늦도록 손님과 시달려야 얻어지는 수입이래야 보잘것 없는 것. 그래도 먼 내일을 위해 젊어서 고생을 하자며 아빠와 서로 격려를 주고받으며 연중 무휴의 이 고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형편에 훈이의 조그만 소망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물론 무리를 해서라도 보내려면 안 될 것도 아니지만 지금 비록 마음이 아프더라도 나중에 그를 보다 떳떳이 대학까지, 그리고 원한다면 대학원까지라도 부담감 없이 보내기 위해선 오늘의 이 아픔을 참아야겠기에 어린 꿈은 무참히 꺾이고 만 것이다.
『공중의 새들을 보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고 하신 복음 말씀은 힘껏 노력할 때 주께서 우리의 이 조그만 소망을 들어 주시리라는 것으로 믿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일할 작정이다.
훈이의 꿈은 깨어졌으나 대신 유치원생용의「일일공부」를 받아 손님이 없을 때 틈틈이 가르치고 있다. 물론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것보다는 너무나도 부족하겠지만 이 엄마는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고 있다.
열심히「일일공부」를 들여다보던 훈이가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문득 측은한 생각이 든다. 조용히 그의 예쁜 뺨에 입을 대고 용서를 빈다. 『훈아! 이 엄마의 심정을 알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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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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