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이 검은 피부 때문에 일생 천대를 받고 살아야 하는 흑인들은 그들 종족의 마스크 때문에 비애를 째즈라는 리듬에 싣고 깊은 한을 달래 고생의 부조리를 울분을 풀 듯 표현하였다. 목쉰 끈끈한 소리 그리고 사람의 가슴을 차분하게 진정시켜 주는 블루스와 흑인 영가는 아무래도 그 투박진 입술로 불러야 더할 나위 없는 멋이다.
불현듯 흐느끼며 좀 울고 싶은 사람에게 찡하게 가슴을 울리는 가락이 되리라.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얼굴을 만들어 가지고 산다. 슬플 때 어제의 얼굴과 기쁠 때 오늘의 얼굴 만날 때와 이별할 때 진실을 고백할 때와 거짓말로 울 때 이성끼리와 동성끼리 어릴 적 앳된 모습과 오늘의 상형문자 같은 내 모습이 달라진다. 사실 이 세상을 용케 살아갈려면 고정 마스크 하나의 단순 기교로는 사회 속에서 소통될 수 없다.
서커스의 본질은「웃음의 예술」이듯이 인기자의 배우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많은 배역을 능란하게 처리해야 한다. 자기의 참모습을 감추고 꼭두각시 노름을 한다. 청년들의 우상 앞에 열광이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손수건이 날르고 함성을 지르다 발을 동동 굴리고 오줌이라도 쌀 것 같이더욱 더 미쳐 버리면 삼각판츠도 벗어 던질 것이다.
울며 웃고, 웃으며 우는 탈바꿈의 재주, 그것을「탤런트」라 한다면 세상은 크나큰 무대요 그 무대가 바뀌면「그 인간」(더러운 그 자식)도 변하였다.
사회란 곧 탈과 탈의 만남이며 그것을「얼굴」이라 한다. 허구의 얼굴로 눈 딱 감고 과장 자리에 앉으면 과장, 사장 자리에 앉으면 사장이라 불러 준다. 머리 감고 가사를 걸치면 중이요, 수단을 감싸면 신부요, 별을 달면 장군이요, 군번을 매면 여잔들 군인 못 되랴.
이런 실상은 제 몫에 따라 연출가와 연기자는 늘 자기 반역과 변용이기도 하다.「천연두는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그 아름다움을 죽여 버린다」(프랑소아ㆍ모리악)는 말도 있다. 저 사람 이사람 과연 그 얼굴이 원본일까 견본일까. 그곳에 본시의「나」(ATMAN)가 다소곳이 담겨져 있을까?
그 얼굴에 진실은 그 눈이지만 때로 괴기한 스핑크스의 얼굴이 너무 자주 탈바꿈만 한단 말이다. 이스라엘 건국 10주년 기념 때 외국 귀빈을 초대한 벤구리온이『건국의 모습을 보여 드렸습니다. -좋은 면만 보신 듯합니다. -만일 우리의 설명 부족한 데가 있다면 내일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거기에 놀고 있는 아해들의 눈동자를 봐 주세요. 그 눈동자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만일 그 눈동자가 어둡고 탁하다면 이 벤구리온 이스라엘 수상은 시시한 것들만 만들었구나 하고 비소하며 돌아가십시요. 그러나 아해를 눈동자가 밝고 빛나고 있다면 내일의 이스라엘은 밝을 것입니다』했다. 저 명동 고층 건물의 숲 속을, 저 사람끼리 막 부딪치는 종로 네거리를, 저 불고기 냄새 자욱한 남포동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선남선녀들 하아, 그 많고 많은「라면」을 뒤집어 쓰고 누가 누군지 약속만 한 얼굴들, 그것이 진정 당신들의 원판이라면 세상은 얼마나 더 밝고 미덥고 즐거우랴. 슬로 슬로 킥킥 껴안고 끌어안고 저기 막 모든 스텝의 반주가 끝나고 나이트 클럽 어두운 곳에서 쌍쌍이 여인들이 한바탕 춤의 열기를 내뿜고 상기된 얼굴로 도망치듯 뛰어간다. 『그거 내 얼굴이 아니다』집에 들면 요조숙녀요 아내이자 어머니다. 그렇다. 내일의 약속, 인생 가면 무도회에 또 어떤 탈을 쓰고 갈까. 아 여보세요. 당신이 누구이십니까? 도대체 당신은 누굴 두고 그렇게 찾아 헤메입니까? 우리는 흔히『야이 이 친구 어딜 가!』하고 지나치는 사람의 등을 잡으면 생판 모르는 남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 이만 여기서 작별 인사를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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