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어제도 밤 11시가 넘어서야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결혼 2년 2개월 동안 이런 일이 드물지 않아 이젠 면역이 되다시피 한 터이지만 요즘은 매일 같이 11시를 넘기곤 하는데 불안한 생각이 들어 물어 보았더니 회사에 일이 생겨서 회의를 하고 회사 간부를 만나느라고 늦으셨다는 것이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얼마 전 국내 모 재벌에 흡수되었는데 새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전 종업원에게 일단 사표를 낼 것을 지시하자 종업원들은 그럴 수 없다고 남편을 대표로 뽑아 협의 중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 전부터 JOC운동에 참가해 온 남편은 기업주의 횡포가 있을 때마다 앞에 나서곤 해 가슴을 조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번은 다른 때와 달라 문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편이 군에서 제대한 후 결혼 날짜를 1년 가까이 미루어 가면서 둘의 박봉으로 저축 겨우 13만 원을 만들어 결혼식을 올린 우리다. 남편의 봉급은 2만7천 원 야근을 하는 달이라야 3만 원 정도다.
이 수입으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림을 꾸리기가 힘겨워 나는 결혼 전에 다니던 방직회사를 다시 찾아야 했고 그래서 지금도 근근히 살아가는데 행여 남편이 이번 일로 해고라도 당한다면 하고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 올 뿐이다. 얼마 전『남들처럼 고분고분하면 봉급도 오를 터이니 JOC고 노동운동이고 다 그만 두시라』고 짜증을 부리자『노동자들이 몰라서 설움을 겪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동자의 의식을 계발하는 것은 노동자의 권익만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야』하실 때 나는 공연한 짜증을 부렸다고 후회마저 했었다.
그러나 어쩌랴? 가정과 남편이 우선 평화롭기를 바라는 것이 여자의 마음인 것을. 아침이 되어『너무 걱정 마라』면서 출근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마치 출전하는 용사의 모습을 느끼며 이렇게 기도해 본다.
『가난은 하지만 장한 남편의 그늘에서 행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허지만 회사 일이 무사히 해결되어 더 큰 감사를 드릴 수 있도록 당신의 도움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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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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