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무실에 십자매 한 쌍을 기르는데 요즘 새끼를 깠다. 평소에 두 놈이 싸우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 새끼에 대한 어버이(?)의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낯선 사람이 올라치면 즉시 두 놈이 둥지로 가서 새끼를 보호하는 짓이며 좁쌀은 물론 채소를 물에 담갔다가 나른하게 씹어서 새끼를 먹이는 품을 보고 있노라면 복잡했던 머리가 식혀질 때가 많다. 사람을 욕할 때나 나무랄 때는 으레 짐승에 비교해서「개만도 못한 놈」「돼지 같은 놈」「××새끼」라고 곧잘 한다.
존엄한 인격을 가진 만물의 영장을 동물과 동격으로 대접한다든가 그 이하로 취급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모독이요 어느 욕보다 심한 욕일 것이다.
하기야 부모를 박대하면서도 개에게 대한 정성과 보살핌이 극진한「개효자」도 있고 이웃과 친척들이 굶주림에 시달려도 돌봐 주지 않지만 개에겐 흰 쌀밥과 고기를 봉양하고 감기만 들어도 법석을 떠들어 대는 족속들이 많으니 인간이 애완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 때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진정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동물과 비교한다 해서 그것이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인간은 배은망덕하고 헐뜯고 짓밟으면서 중상모략하지만 가축들은 주인에게 배반은 고사하고 충성을 다하여 섬기고 봉사하다가 급기야는 자기의 몸뚱아리마저 남김없이 사람들의 영양으로 제공하지 않는가. 이솝은 동물들을 통해 인간의 잘못들을 고발하고 점잖게 뒷통수를 후려쳤지만 우리가 동물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다.
동물들이 새끼를 사랑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제 목숨까지 바치는 그것이 아무리 본능적인 행동이라 할지라도 비정한 부모들은 이런 본능마저 잊어 버렸단 말인가.
자식이 부모를 때리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남편이 외도하면 아내도 이에 질세라 춤바람 계바람에 놀아나다가 드디어는 가정마저 내동댕이 치고 정부를 따라감으로써 죄 없는 아이들이 천애의 고아가 되고 그 아이들이 소위 문제아가 되어 사회의 독소가 되는 이 악순환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얼마 전 가출아 우범아들을 조사한 결과 그 대부분이 애정 결핍 가정 불화 등 화목치 못한 가정 관계임이 밝혀졌다.
나는 겨울이면 운동 겸 취미로 가끔 사냥을 갔는데 어느 분이 당뇨병에 까마귀가 좋으니 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두 마리 중에서 한 마리를 잡고 크게 후회하고 많은 것을 배운 일이 있다.
한 놈을 잡았더니 남은 한 놈이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원망하듯 빙빙 돌다가 죽은 놈 옆에서 떠나지를 않고 슬피 우는 것이 아닌가?
그 얼마나 갸륵한 부부애이랴!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울음소리가 탁하고 빛깔이 새까맣기 때문에 凶鳥라고 하지만 어미가 늙어 움직일 수 없으면 새끼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유일한 孝鳥요 새끼에 대한 사랑 또한 두터운 慈鳥라고 부른단다.
비단 까마귀뿐 아니라 갈매기를 비롯하여 이런 짐승들이 많다고 한다.
친구와 친구가 못 믿고 부부가 부모와 자식마저 믿지 못하고 주먹질하고 겉으로는 점잖은 채하며 위선으로 장식된 우리가 이성과 인격을 가진 존귀한 존재라고 뽐내지만 정말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이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는 정순재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10회에 걸쳐 김동억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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