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성당 첫 청소 날.
마치 어린 소녀 시절 소풍 가는 전야처럼 꿈은 부풀어 빨리 날이 새면 성전을 청소해야지 어떻게 하면 가장 조리 있고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은 마냥 바쁘기만 하다. 잠이 제대로 안 온다.
3월 5일 첫 화요일 한 시 정각 빗자루 걸레 고무장갑 등을 잔뜩 넣은 바께쓰를 손에 손에 들고 모두가 어색하게 빙그레 웃으면서 성당 정문 앞으로 바쁘게 모여든다. 얼핏 보기에 바로 1개월 전 설 윷놀이 때는 주름진 얼굴이나마 그래도 늙은 기생처럼 모두가 곱게 단장했던 그때와는 너무나도 달리 자갈마당 보국대 할머니들 차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반을 나누어 청소에 들어갔다. 제대방을 맡은 사람들은 큰 공이라도 더 세우려는 듯 모두가 으시대며 좋아했다. 평소에 혈압이 높고 다리가 아프다는「맘보 마리아」는 아픈 곳은 간데없이 시멘트 복도를 천당 가는 고속도로인 양 닦고 닦아 죽을지 살지 모르고 설친다. 오른팔을 붕대로 걸쳐 맨 데레사가 왼손으로 의자를 열심히 닦고 있다. 마음에 몹시 걸린다. 아무리 그만 두래도 자꾸만 닦고 있다. 나는 마음 속으로「닦으라 매일 같이 마음과 성당을」이런 표어를 새겨가며 눈을 고루고루 둘러 보았다. 모두가 열중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순간이랴…. 누가 말하였다. 아네 씨는 오늘 오후 2시에 담석증 수술을 받으러 입원한다고 미리 와서 자기 분 청소를 해 놓고 갔다고… 그 순간 나의 가슴은 뭉클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주여 아네에게 수술을 잘 받게끔 안배해 주옵소서. 옆을보니 땀에 젖은 논나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게 익어 유난히 곱게 빛난다. 세 시가 지나 청소는 완전히 끝났다. 아무도 몰래 제대 앞과 고해방에 향수 몇 방울을 치면서 막달레나 성녀를 연상하였다. 모두가 장한 일이라도 한 듯이 성당 안을 고이 쳐다본다. 성모님이 웃으신다. 성체불이 더 밝아진다. 우리의 마음도 밝아진다. 성당을 나와 교실에 모여 성호를 긋기가 무섭게 보리차와「설기떡」두 조각으로 피로를 달래면서 서로가 쳐다보고 웃는다.
30명은 완전히 일치다. 먹는 모습이 모두가 꿀맛이다. 막내 아들 준다고 한 조각을 종이에 싸는 사람도 있다. 이러기를 어언 3년. 아 이제는 언제 이「설기떡」을 서로 나누며 서로 웃어 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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