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사람의 얼굴처럼 특성 있고 다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얼굴은 사람을 수별하는 척도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건강 기분 상태와 인격과 교양 등 그 사람의 사람됨을 반영한다.
그러기에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간판인 얼굴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특히 여성일 경우 보다 아름답고 남에게 호감을 주기 위하여 문지르고 바르고 닦고 하는 수고와 오랫동안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인내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얼굴의 핵은 눈일 것이다.
눈은 자신의 육체적 조건과 인간성 평소의 소양을 곧잘 투영한다.
자비와 사랑과 성덕이 넘치는성자의 눈 질투와 시기로 가득찬 독살스러운 눈 사색과 안정을 주는 포근한 눈 향수와 기다림을 담뿍 담은 애수의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의 눈 인간을 속속들이 투시할 듯한 예리한 눈 정열과 선정으로 불타는 눈 신념과 큰 희망으로 반짝이는 환희의 눈 좌적과 우수와 고독으로 지쳐버린 절망의 눈 그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눈이 이토록 예민하고 섬세하게 개성을 대변하여 주니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기에 눈을 아름답고 특성 있게 하기 위해 붙이고 칠하는 번잡스러움과 생살을 째는 아픔도 즐거운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어 함은 인간의 본능이요 얼굴과 눈은 미의 중심지이니 이를 추구하는 노력을 누가 책하랴.
나는 가끔 잊을 수 없는 두 얼굴을 생각한다.
하나는 미국「샌프란시스코」번화가에서 동공의 초점을 잃은 채 멍하니 고층 건물을 바라보며 서 있던 40대의 흑인 여인의 처량한 얼굴이다.
그 얼굴 그 눈은 비단 흑백의 차별에서 오는 서러움뿐 아니라 소외 받은 군상의 얼굴이었고 현대인들의 고뇌와 고독 실의와 절망 그리고 하소연과 절규 바로 그것이었다.
현대 문명이 안겨 주는 비극을 너무도 가슴 아프게 대변해 주는 얼굴이었다.
또 하나는 해발 6천여m 산정 스위스의 유명한 관광지「피즈 글로리아」에서 본 얼굴이다.
6월 중순이지만 1m 이상 눈 쌓인 산꼭대기 케이블카에서 작달막하고 머리가 하얗게 센 안재 노인(68세)이 신나게 요들송을 부르며 춤을 추던 얼굴이다. 우리에게는 개인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두 얼굴이 있음을 안다.
세계를 크게 나눠 볼 때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두 얼굴 종교적으로 유신론과 무신론 경제적으로 자유자본제도와 통제공산제도의 두 얼굴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누구에게나 고통 번민 고뇌를 당하는 어두운 얼굴과 희열과 발전과 희망에 가득 찬 밝은 얼굴이 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흑인 여인의 얼굴과 그 노인의 얼굴을 대해야 되는 환경에 처하게도 되고 이 환경을 극복해서 슬픈 얼굴을 기쁜얼굴로 만드는 용기와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말쑥하게 차려 입은 현대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서보다 순박한 농촌 사람들의 얼굴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인간미를 발견할 때가 많다.
선천적으로 축복 받은 얼굴과 도장술을 동원하고 의학의 힘을 빌어서 만든 매혹의 눈보다도 부족하지만 사람의 깊은 내면에서 풍겨 오는 밝은 얼굴과 자비와 성덕이 투영된 눈을 가질 때 우리 삶은 살찌고 포근해지지 않을까?
이 복된 얼굴과 눈은 그 노인과 같이 순박하고 친절하며 그러면서도 강인한 의지로 삶을 기쁘게 영위하는 마음을 가질 때 자연히 얻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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