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날로 다양해지는 사목 분야에서 적소는 있어도 적재가 없고 적재는 있어도 적소가 없다는 소리가 높아진 지도 어제 오늘이 아니다.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한 서울대교구는 사회의 다원화 추세에 대비할 목자 양성을 목표로 인재양성위원회를 독립된 자문기구로 신설했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이 위원회는 특수사목 분야를 개척하고 젊은 사제 개개인의 특성과 천부적 재질을 알아내며 국내외의 특수 교육기관과 그 여건들을 조사하리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위원회는 서울대교구를 사목하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거리와 일터를 전망하여 제시하고 이에 적성인 젊은 사제를 발탁하여 그 소질을 살리도록 주선하는 역할을 할 모양이다.
이 같은 위원회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사목 일선에 나설 동량들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획적으로 양성될 전망이 한결 밝아질 것 같다.
서울대교구가 이 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은 인력 개발과 합리적인 관리의 아쉬움을 뼈저리게 통감해온 경험과 사명적인 사제단으로서의 사목적 열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타의 다른 교구들도 대동소이한 입장에 있겠으나 아직 별다른 대책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서울대교구는 수도좌 교구로서 선도적 모범을 보였다고 봐야 하겠다. 따라서 교회 사상 처음으로 독립된 자문기관으로 출발하는 인재양성위원회에대해 온 교회는 비상한 관심으로 주목하면서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二)
지금까지 우리 교회의 인재 양성은 개별적이며 무계획하고 즉흥적이며 산발적이었다는 것이 정평이다. 우선 적재를 발탁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느 개인의 판단과 친소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대교구가 소질 있는 젊은 사제를 인재양성위원회의 객관 타당성 있는 결정에 의해 발탁토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구에서 신학생들에게 긴 안목으로 먼 장래를 내다보고 연구 과목이나 연한을 정해 주는 계획성도 극히 미흡했다. 때문에 지금까지 배출된 이른바 인재들은 앞으로 필요하리라는 막연한 추측하에 개별적으로 연구 생활을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기피해 오던 어느 분야가 유행처럼 인기를 끌게 되면 연구열이 그쪽으로 쏠리기 마련이었다. 우리 교회에서 한동안 찾기 힘들었던 성서 학자가 최근에 갑자기 늘어나고 교의학자나 윤리 신학자는 도리어 부족되는 역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또한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들의 연구 생활이나 사제 생활을 지켜보는 성실성도 너무나 부족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누가 어느 나라에서 무슨 목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연구 생활을 한다면 무엇을 연구하고 학위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며 귀국 일시는 언제고 애로 사항은 무엇인가를 본부에서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에서 지난 3월 주교회의가 각 교구와 수도회에 해외 거주자의 인적 사항과 연구 과정 활동 사항 국내 장상과의 관계 등을 조사하여 추계 총회에 보고토록 지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치였다.
해외 거주 곧 인재 양성이라는 많은 바람직하지 못한 문제점이 암시되기 때문에 조사 결과에 따른 재정비 작업을 예측할 수 있다. 한편 장상들은 지금까지의 감독 부실에 대해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계획적인 인재 양성과는 거리가 먼 형편에서 스스로 외국에 나가 유학을 하고 스스로 양성된 인재가 교구로 돌아왔을 때 이렇다 할 적소가 없어 당황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기의 적성에 따라 진정으로 하고픈 일을 찾지 못한 채 적소가 아닌 데서 처음부터 흥미를 잃고 고통스런 일을 오직 순명정신으로 견뎌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허덕이는 것은 비극이다. 그것을 초인적 노력에 의해 신앙으로 승화시키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적소를 찾지 못한 인재가『공연한 제사 지내고 어물 값에 졸리는』사고를 내는 것도 이런 데서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서울대교구가 특수사목 분야를 개척하려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배려했기 때문일 것이며 참으로 필요하고도 적절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三)
교회는『사람도 없고 돈도 없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합리적인 인재 양성의 길을 모색해야 하겠다. 필요한 사람은 성신께서 보내 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허송세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의 모든 교구들은 서울대교구의 인재양성위원회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기구를 갖춰야 할 것이고, 개신교 측의 인재 양성 방법과 양성된 인재의 관리 방법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재 양성 문제는 교구 단위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배려돼야 할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교구 자체에서 필요한 인재도 양성해야겠지만 다양한 인재들이 전국적으로 골고루 배정되게 할 전국 규모의 장기 양성 계획이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픈 것은 해외 파견만이 인재 양성의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울대교구가 국내의 특수교육 기관과 그 여건을 조사할 방침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교회의 일꾼들에게 견문을 넓힐 해외 파견의 정기적인 교육 훈련을 통해 재능을 보완할 기회는 제도적으로 마련해 줘야 할 것이다.
교육 없는 재능은 한탄스럽고 재능 없는 교육은 무익하며 후견 없는 교육은 고독하고 적소 없는 일꾼은 비극이다. 인재 양성 문제에 있어 교회는 전체 교회와 교구의 장기 계획에 따라 객관ㆍ타당성 있게 적재를 발탁하고 그 양성되는 과정을 성실하게 지켜보며 사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함을 거듭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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